매일신문

[기고] 나라 위해 희생한 영웅 기억해야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우크라이나 국회는 지난 1월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가시화되자, 러시아 침공 이후를 대비한 속칭 레지스탕스법인 '국민저항법'을 통과시켰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도 법적으로 민병대를 조직하여 전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민저항법 발효 직후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밝혔다.

국가가 위난을 당했을 때 국민들의 자발적인 저항운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들부터 정의로워야 하며 먼저 솔선수범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한 국민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줘야 하고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들을 기리지 못하는 국가는 그만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전세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명나라군의 참전인 것은 맞지만, 조선이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왜군의 보급로 차단이라고 보는 게 옳다. 왜군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해로를 이용해 보급물자와 군사를 수송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 장군에 의해 번번이 막히게 된다. 그래서 왜군은 힘들어도 육로를 통한 보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병들의 게릴라 전법에 의해 왜군은 상당한 애를 먹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은 조선판 레지스탕스 민병대나 마찬가지였다. 의병은 조선 땅에서 왜군을 몰아내는 데 있어서 적잖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조선 조정에서는 논공행상이 있었는데, 당시 신하들은 임진왜란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명나라 때문이라고 보았다. 왜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회복한 공로는 모두 선조가 명나라에 지성으로 엎드려 사대한 결과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한 선조가, 나라를 말아먹는 것도 모자라 팔아먹으려 했던 선조가, 조선을 구한 최고 공로자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공신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총 189명이다. 군인들에게 주는 '선무공신'은 18명에 불과하였다. 선무공신 1등은 이순신, 권율, 원균 등이었다.

이에 비해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를 따라 의주로 같이 도망간 신하들은 '호성공신'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숫자는 무려 86명이나 되었다. 여기에 내시도 24명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왜군에 맞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목숨을 걸고 싸운 의병들과 승병들은 단 1명도 공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국가가 기억해 주고 기리지 않는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는가.

이러한 조선 조정의 잘못된 논공행상은 그로부터 30여 년 후인 1636년 청나라가 침범한 병자호란에서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 임금과 조정 신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조선 팔도의 어느 관군도 의병들도 남한산성에 나타나지 않았다. 조선 조정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여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3번 무릎을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의 치욕을 맛보아야 했고 조선은 청나라의 반식민지가 되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진정한 영웅들을 예우하지도 기억하지도 않고 오직 명나라에 사대하고 입으로만 결사항전을 외친 정의롭지 않은 나라 조선이 겪어야 할 인과응보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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