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아장동사(我將東徙)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코로나 이전, 식당에 갔다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분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들을 의도는 없었으나, 자리가 가까웠던 데다, 울면서 큰 소리로 얘기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다 들렸었다.

요는 이랬다. 아침 회의에 본인이 회의 자료를 챙겨야 했었는데 깜빡했고, 상사의 불호령에 회사 근처 복사집에 부탁해서 겨우 준비했다는 거였다. 얘길 놓고 보면 신입사원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며, 별다를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분은 본인의 실수에 포커스가 맞춰진 게 아니라,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그렇게 닦달하냐. 새치기 복사하려고 복사집 아저씨한테 이거 바로 복사 안 해가면 저 죽어요라고 매달리는데 너무 비참했다. 그 상사 나중에 큰코다치게 해주겠다. 매일 아침 이직하겠다는 마음으로 출근한다.' 뭐 이런 식이었다. 같은 직장동료는 아닌 것 같은 일행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그 상사에 대한 욕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 상사분이 뭐랬는지는 몰라도 나 같아도 그 상황에선 한마디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여성분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我將東徙(아장동사)라는 우화가 있다. 이사 가는 올빼미에게 어디로 가냐고 비둘기가 물어보니, 사람들이 내 울음소리를 싫어해서 동쪽 마을로 이사 가려고 한다는 대답에, 울음소리를 고칠 수 없다면 이사 가도 사람들은 니 울음소리를 싫어할 거라고 비둘기가 대답했다는 얘기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야단을 맞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본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직장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결론은 하나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벌을 받고, 다시는 안 그러는 것.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옵세(obsessive의 첫 두 발음. 강박적인 성향을 뜻함)가 된다. 병원 일이라는 게 대부분 환자의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해서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전공의에게 주의를 주게 된다. 졸면서 잘못 누른 enter키로 약 용량이 바뀔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전공의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일하는데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냐고. 사실 10년 넘게 똑같은 회진에 똑같은 꾸중이지만 10년 전에 비해 요즘 전공의들은 좀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저는 ~~ 했는데요"라고, 억울함이 묻어 있는 대답이 종종 따라온다. 잘못을 앞에 두고 울기부터 하는 인턴이 있는가 하면 아들을 야단쳤다고 병원에 와서 항의하는 전공의 부모도 있다고 들었다. 상황이 다 다를 수는 있겠으나 결론적으로 일은 안 되어 있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었으며, 그건 그 일을 맡은 사람의 잘못이다. 깜빡했건 피곤했건 했다고 생각했는데 안 되어 있었건 간에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중요한 세상이 왔다.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면 자존감이 떨어지니 그러지 말라는 책도 보았다. 하지만 '내'가 벌인 일을 수습하는 건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책임이다. 'better me'라는 말이 있다. 어제보다 나은 나. 발전하는 내가 되기 위해 남 탓을 하기보단 내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어떨까.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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