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만섭 국회의장은 국회가 집권 세력의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3년 재산공개 파동으로 박준규 국회의장이 자진 사퇴하자 그 뒤를 이어 처음 국회의장 자리에 올랐다. 이 전 의장이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김영삼(YS) 대세론'을 건의했고 그 반대급부로 YS가 이 전 의장을 내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3년 12월 내년 예산안과 추곡수매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YS는 법정 기일 내에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전 의장은 "난 그런 거 안 합니다"라고 잘랐다고 한다.
이후 여당은 강행 처리를 위해 사회권을 황낙주 부의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다. 전래(傳來)의 수법대로 의장이 야당 의원들을 유인하는 동안 사회권을 넘겨받은 부의장이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 전 의장은 사회권 이양을 여당과 야당에 동시에 공개했다. 야당은 격렬히 저항했고 결국 강행 처리는 무산됐다.
김대중(DJ) 정부에서도 이 전 의장의 날치기 거부는 계속됐다. 16대 총선에서 DJP 연합의 자민련이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이에 DJ가 자민련도 교섭단체가 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전 의장은 거부했다. 그 뒤 DJ는 두 번 다시 이 전 의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역대 국회의장의 리더십', 국회입법조사처)
그리고 2002년에는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헌정 사상 첫 '무당적 국회의장'이 됐다. 기자가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소속 정당에서 섭섭하다는 말을 들어가며 개인적으로 지켜왔던 소신이 제도화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5선 김진표 의원을 선출했다. 그는 계파색이 옅고 그동안 이념 성향도 중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돌변했다.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법사위 안건조정위원장을 맡아 최장 90일간 숙의할 수 있는 법안을 17분 만에 통과시켜 당의 바람에 100% 부응했다.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고 하니 국회의장이 되면 역시 그럴 것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봤다면 '어쩌다 민주당이 이렇게 망가졌냐'라고 통탄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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