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어떤 모임의 회원들만 참석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뜨내기손님이다. 머뭇거리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선남선녀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채웠다. 연회비를 내고 음악 감상을 하는 상류사회 사교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나는, 눈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이 부셨다. 로코코 장식을 한 카페 인테리어에 현혹된 순간 유럽의 살롱문화와 커피하우스가 언뜻 떠올랐다.
그 당시 살롱은 남녀의 자유로운 만남이 허용된 곳이자 지성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귀부인들이 독서를 하고 노래도 부르며 지적인 대화를 나누던 살롱문화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토론과 교류가 살롱의 핵심이었는데 그 기원은 아테네의 담론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살롱에서 후원자를 찾기도 하고, 예술을 교류하면서 창의적인 작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커피하우스도 살롱과 비슷한 성격의 문화공간이다. 살롱이 상류층의 사교장이라면 커피하우스는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만나는 곳이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사상이 대중들에게 퍼지던 시기에 커피하우스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카페 레 되 마고' 와 '카페 드 플로르'는 현재까지 파리의 명소로 남아있다.
우리나라에는 1931년 경성에서 최초로 문을 연 다방이 '낙랑파라'다. '낙랑파라' 다방은 예술가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의 장을 열었던 곳이다. 내가 사는 대구에도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 화가의 백록다방, 구상 시인이 '초토의시'를 발표했던 꽃자리 다방 등이 있다.
현대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정보화시대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커피머신보다 핸드드립. 오디오를 통한 감상보다는 라이브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음악회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조심스럽게 마련된 자리인 만큼 느낌이 새롭다. 숨소리마저 고요한 객석을 향해 바이올린과 기타의 열정을 실은 연주가 이어졌다. 한 줄 한 줄 현에 맡기고 하늘과 지상을 오르내리는 연주에 가슴이 울컥했다. 방역과 거리두기에 무뎌진 오감을 일깨우는 음악은 최상의 치유가 아닐까 싶다.
커피하우스에서 현대 버전의 살롱문화를 마음껏 즐겼다.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했으니 중세의 귀부인이라도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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