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대안의 클래식 친해지기] <19> 리스트 ‘초절기교(超絶技巧) 연습곡’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나는 지금 내 펜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 리스트가 지금 나의 연습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그가 나의 머릿속의 생각을 날려버리고 있네. 그의 연주를 빼앗아오고 싶을 정도라네." 이 글은 쇼팽이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작곡가 페르디난트 힐러에게 쓴 편지 중 일부다. 당대의 유럽 최고 피아니스인 쇼팽은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극찬에 마지 않았다. 리스트(Franz Liszt·1811~1886)는 전례없는 비르투오소의 압도적인 피아노 연주자로 당시 유럽의 많은 사람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리스트의 연주에 관한 기록들은 놀라움을 넘어 소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초인적이다. 당대는 물론 음악사의 모든 피아니스트를 통틀어 리스트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초견 능력과 즉흥연주의 현란한 기교를 소유했다. 급격한 도약이나 빠른 패시지, 긴 아르페지오와 장식음, 분산화음에 의한 선율처리, 평행 트릴 등 새로운 운지법을 연구해 연주와 작곡에 도입했다. 실제로 그는 스케일로 이루어져 있는 쇼팽의 연습곡 오른손 기교 부분을 옥타브로 변형해서 원래 속도대로 연주하는 등 신기에 가까운 연주 기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스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리스트는 매우 기교적이며 화려한 작품을 남겼는데, 피아노곡에서는 이전의 주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관현악 소리처럼 우렁차고 화려한 기교를 요구한다. 그는 보통 접하기 어려운 관현악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일반인에게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곡을 편곡하거나 연주해서 알리기도 했다. 그 중 베토벤의 제9번 '합창 교향곡' 전체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이 유명한데, 매우 높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리스트는 '교향시'(Symphonic poem)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교향시는 이전의 순음악적인 교향곡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표제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시나 역사, 회화, 영웅, 심리 등 다른 예술분야에서 착상한 작곡자의 영감을 관현악으로 구현한 것이다. 리스트의 교향시는 가시적이거나 묘사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상념을 중시했고, 교향시의 표현 수단으로 관현악을 사용함으로써 대규모의 관현악 구성 방식을 표방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기교적인 요소가 줄어든 대신 실험적인 화성과 반음계적 진행, 모호한 조성을 사용해 낭만주의 이후의 음악을 예견했다. 그의 '무조 바가텔'에서는 제목에서처럼 무조를 암시했고, 순례의 해 3년에 쓴 '에스테 별장의 분수'에서는 인상주의를 예견하기도 했다. 그는 낭만주의 음악시대에 바그너와 함께 신독일악파를 이끌었는데, 이념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더욱 진일보한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추구한 음악가로 취급받는다.

따라서 그는 기존의 대표적 음악형식인 교향곡을 탈피해 '교향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창안했고, 쇼팽이 구축한 테크닉과 정신적인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초절기교 연습곡' 등 피아노곡을 통해 기교적인 표현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에 대해 그의 조국 헝가리는 리스트 탄생 200주년인 2011년, 부다페스트 페리헤기 국제공항의 명칭을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으로 변경했는데,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다.

대구시합창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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