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맥주잔의 마법'이라는 게 있다. 정년을 코앞에 둔 임원도 500㏄ 생맥주잔만 들면 대학생처럼 변하더라는 거다. 영약이 따로 없다. 잔이 옛날 형태에 가까울수록 잘 듣는다. 회식 때 시험 삼아 해 보는 건 자유다. 잔을 마주하면 스스로 그 시절을 소환해 유영한다. 취기에 얹혀 부유하는 기억을 죄다 건지려 한다는 게 부작용이다.
치매를 늦추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회상 치료도 이와 비슷하다. 1979년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엘렌 랭어 교수는 '시계 거꾸로 되돌리기 연구'를 진행했다. 70대 이상 노인들을 1959년의 상황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신문은 물론 TV, 라디오 등의 미디어도 그때에 맞췄다. 일주일 뒤 노인들의 지능과 신체는 1959년으로 돌아가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실험은 이어진다. 2017년 치매 노인들이 생활하는 독일의 한 양로원은 옛 동독 시절 정부 직영 소매점인 '인터샵'을 복원했다. 동독 시절 주요 상품을 진열해 두고 당시 유행했던 노래도 흘러나오게 했다. 노인들은 매일 인터샵에 들렀다. 이곳이 과거로 가는 '게이트웨이'였음은 말하나 마나다.
추억 소환에 적절한 물건과 공간은 현재 흔하지 않은 것일수록 좋다. 다이얼식 전화기, 수동식 라디오, 로터리식 텔레비전 정도면 1980년대까지 거뜬하다. 최근에는 푸른 투명 날개에 1, 2, 3단 바람 세기 버튼이 툭 튀어나온 선풍기도 나왔다는데 마케팅에서 복고풍을 활용하는 건 흔하다. 젊은 층에는 신기하고, 장년층에는 친숙하다. 내년 출시될 신형 그랜저 디자인도 '각 그랜저'에서 따왔다고 한다.
좋았던 기억만 남겨 읊조리기 마련인 게 추억이다. 어디까지나 편집된 기억이다. 그때의 노래와 분위기는 추억을 불러오는 역할일 뿐이다. 2022년에 보릿고개를 이야기하며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면 곤란하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1980년대를 되새기는 것도 추억의 영역이지 주사(酒邪)로 넘어가면 민폐다.
현대사의 변곡점을 만든 1987년 주역들에게 용감하게 물러나줄 것을 요구하는 '86 용퇴론'이 반복된다. 나이순으로 물러나라는 게 마뜩잖다. 87학번 새내기가 곧 있으면 예순이긴 하다. 물론, 그때의 젊음과 열정이 여전하다면 "아직은 아니다"라고 외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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