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농촌에서 지내다 2019년 '숲세권'에 위치한 무학숲도서관으로 왔다. 이곳에서 생태·환경 특화 프로그램을 맡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프로그램은 가족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사계절 다양한 작물을 직접 길러보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도서관 안에서 나비 애벌레를 키우고,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태어나는 과정도 함께하며 도서관을 방문하는 친구들과 함께 나비를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는 경험도 제공했다.
빽빽한 건물 속 도심에서 지내며 직접 농사를 지어보고, 나비의 알이 애벌레가 되고 나비로 태어나는 모습을 두 눈에 직접 담고, 만져볼 기회가 흔할까? 새 생명이 탄생하는 모습에 아이와 함께 뛸 듯이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는 것은 매년 보지만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나에게 항상 골칫거리는 산에서 내려와 가족들의 텃밭에 심겨 있는 작물을 탐내는 고라니였다. 퇴근하고 다음날 출근해 보면 밤새 한두 가족의 텃밭은 고라니에게 피해를 보곤 했다.
지난해, 매일 도서관이 마감하기 전 물을 주러 오던 한 가족의 텃밭도 고라니에 의해 망가졌다. 정성스레 키워온 작물을 고라니에게 뺏긴 아이들은 속상해했다. 부모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속상해하는 아이를 달래기 바빴다.
'내가 줄 수 있는 위로가 뭘까?'라고 생각하다 아이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책의 제목은 '고라니 텃밭'. 숲 속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텃밭 농사를 시작한 화가 김 씨 아저씨가 텃밭을 망쳐 놓는 고라니와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저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고라니가 망쳐 놓은 텃밭'으로 시작하지만 '고라니를 위한 텃밭'으로 마무리 된다. 자연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사는 곳임을 깨닫게 한다. 텃밭을 망치는 고라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려는 어미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름의 반전을 주는 책이다.
다음 수업이 있던 날 이 가족은 자신들의 텃밭 이름표를 '고라니 텃밭'이라고 적어 왔다. 아이에게 텃밭 이름표의 의미를 물었다. "숲은 원래 동물들이 있어야 하는 곳인데, 사람들이 여기 와서 사는 거니 동물들에게 우리가 먹을 걸 나눠줘야 해요." 텃밭 울타리를 다시 점검하라는 나의 당부에 아이의 부모님은 "와서 먹어도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
내가 추천한 한 권의 책이 이 가족에게 자연을 함께 나누는 방법을 생각하게 했구나 싶어 새삼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림책의 저자는 말한다. "때로는 속상하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어쩌면 숲의 주인은 숲속 동물들이고, 그들의 영역에 사람이 들어와 농사를 지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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