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내 인생 마지막 장면 내가 결정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얼마 전 언론 매체가 '세계 최고의 미남'으로 불렸던 프랑스의 전설적 배우 알랭 들롱이 향후 건강이 더 악화하면 안락사를 하기로 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외신 보도를 전했다. 그는 현재 86세로 췌장암을 앓고 있는데 과거 화려했던 젊은 날의 모습과 최근 병색이 완연한 두 사진을 나란히 캡처해서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음을 맞는 것이 자연의 섭리지만 나라마다 탄생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각은 다르다. 특히 죽음을 대하는 문화는 나라, 민족, 종교마다 많은 차이가 있다. 죽음과 관련된 의료계의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가 안락사와 존엄사 문제이다. 둘 다 모두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치료를 중지하는 것은 같으나 안락사는 약물 투입 등 적극적인 조치를 하는 데 비해, 존엄사는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 항생제 투여 등을 하지 않고 생명유지장치 제거 등 소극적인 방식이란 차이가 있다.

의료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인류를 괴롭히는 다양한 질병을 고쳐서 건강을 회복시켜 평균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켰다. 그러나 때로는 환자를 회복시키지는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을 연장시키는 기술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적극적인 치료에도 회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말기 암 환자의 경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고통만을 주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막기 위해 우리나라도 '연명의료 결정 제도'가 2018년부터 도입되어 올해로 4주년이 되었다. 구체적인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로 엄격히 한정하고,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을 때 인정된다. 의식불명 등으로 환자의 뜻을 직접 묻기 어려울 때는 미리 작성해놓은 '사전의료의향서'등이 의사 추정의 근거가 된다. 제도의 주요 내용은 임종 환자가 치료 중단을 직접 결정이 가능하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앞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될 경우에 대비해 연명의료에 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둘 수 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받은 등록시설을 방문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뒤 작성, 등록해야 한다. 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 등록돼야 법적 효력을 갖는다. 의향서를 철회하고 싶을 경우 등록시설을 다시 방문해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올해 현재 115만 명이 참여했고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치료 중단 이행 사례도 20만 건이 넘었다.

이 법은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막아 '웰다잉'(well-dying) 문화를 자리 잡게 하자는 취지다. 연명의료 결정 제도는 죽음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아직까지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제도를 보완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하여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환자 자신과 환자 가족들의 최선의 이익이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 가장 존엄한 가치임에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존엄하게 떠날 권리도 인간의 권리일 수 있다. 이 모든 논쟁은 결국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필수불가결할 것으로 생각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삶-죽음이라는 연결고리를 벗어날 수 없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 죽음이 더 이상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