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정당한 공권력 집행에 눈치 보는 일 없어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파출소에 체포돼 있던 베트남 국적 피의자가 도주하는 사건이 터졌다. 경찰은 피의자가 손에서 수갑을 뺀 뒤 달아났다고 밝혔다. 피의자의 신원은 확인됐다지만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사건 당시 파출소에는 경찰관 세 명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책상에서 업무를 봤다고 한다. 피의자의 도주와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의자와 밀착해 있어야 할 사건보호관도 없었다. 넓지 않은 파출소의 구조상 고개만 들면 피의자가 어떤 짓을 하는지 볼 수 있는데 이마저도 안 됐다. 한마디로 안일한 대처 탓이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체류 기간 만기인 불법체류자로 확인됐다고 한다. 브로커 비용 등 입국에 들어간 경비를 속셈하며 애를 태웠을 것이다. 어차피 쫓겨날 판이니 도주의 유혹도 컸을 것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요주의 인물로 다뤘어야 했다. 경찰도 불법체류자였던 터라 신원 인계를 우선시했을 것이다. 곧 추방될 처지인 피의자에게 동정심도 일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요인들이 복합돼 도주의 최적 조건이 됐다.

이번 사건은 원칙대로 공권력을 집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려준다. 강력범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대구 경찰의 이런 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던 피의자가 배식구를 통해 탈출했다 엿새 만에 붙잡혔고, 이듬해인 2013년에는 성서경찰서에서 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던 10대가 수갑을 찬 채 경찰서 담장을 넘어 달아났다 14시간 만에 붙잡히기도 했다. 모두 경찰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탄 도주였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경찰이 적극적 공권력 집행에 주저했던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수갑 사용과 인권 침해 사이의 소모적인 논쟁에 스스로를 묶어 버려서는 곤란하다. 불법체류자에게도 엄정한 공권력의 적용은 마땅하다. 선량한 국가 이미지가 무너진 사회질서에 우선할 수는 없다. 불법체류 이외에도 법질서를 지키면서 정당하게 출입국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법을 어겨 놓고도 큰소리치는 소수에 휘둘려서는 공권력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 공중의 안녕과 평화를 해치는 이들의 행패가 인권으로 둔갑하도록 내버려 둬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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