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유행하던 단어를 꼽으라면 '躺平'(탕핑)과 '内券'(네이쥐엔)이었다.
탕핑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는 뜻으로 '취업도 연애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지칭한다. 차와 집을 사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키우지 않으며, 돈도 쓰지 않고 그저 죽도록 누워 있다는 의미로 우리나라의 신조어 'N포 세대'와 같다.
'네이쥐엔'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안으로 돌돌 말리는 '춘권'(春卷)처럼 성공할 수 없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좌절을 담고 있는 슬픈 단어이다. 躺平과 内卷은 쉽게 돈을 벌 수도, 성공할 수도 없어진 젊은이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재확산 이후 상하이가 전면 봉쇄되고 베이징마저 속속 차단되면서 요즘 중국에서는 '润'(룬)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젖다, 혹은 윤기 있다, 윤택하다는 뜻의 한자 '潤'이 갑작스럽게 중국에서 대세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润'의 중국어 발음은 '룬'이지만 병음은 run으로 달리다, 도망가다, 탈출하다는 뜻의 영어 run과 같다. 이 단어는 애초 상하이가 봉쇄되기 시작한 3월 말부터 상하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이제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처음엔 봉쇄된 상하이에서 벗어나고 탈출하고 싶은 욕구만 표현했지만 이제는 중국을 떠나고 싶다거나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다는 이민(移民) 의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핑계로 매일 핵산검사를 강제하는 등 제로코로나를 목표로 한 통제와 봉쇄가 반복되면서 중국 전역이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진 것이다. 갑갑해진 중국을 탈출하고 싶은 인민의 욕망이 '润'이라는 단어 하나에 집약됐다. 润은 현재의 상황에서 도망가다, 탈출하다라는 단순한 의미의 'run'에서 아예 중국을 탈출하거나 이민 가고 싶다는 emigrate로 확대된 것이다.
실제로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나 위챗 등에서 润이나 移民이라는 단어 검색 조회수는 천정부지로 급증했다.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봉쇄하는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의 장기화로 온갖 자유를 제한하고 감시하는 중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 욕구를 반영한 무조건적인 이민으로 바뀌고 있다.
당장 IT와 금융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기술직들의 해외 유출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다국적기업들의 중국 철수 움직임도 본격화되면서 이들 기업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와 임원 등 기술 전문직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도 뒤따를 전망이다.
경제활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강제적 봉쇄와 중국 방역 당국의 경직된 태도 등에 따라 중국 경제는 물론 중국 정치 상황마저 불확실해졌다. 그러자 그동안 중국공산당이 제시한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구호 아래 중국의 미래를 낙관하던 중국인들마저 중국을 떠나고 싶어 하게 된 것이다.
해외 이민에 중국인의 관심이 급증하자, 중국공안부 산하 이민관리국은 지난 5월 중순 자국민의 불필요한 출국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며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润'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인의 무분별하고 불필요한 출국은 물론 이민을 금지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사실상 여권 발급과 재발급을 해 주지 않으면서 사업이나 유학 등 긴급한 이유로 출국해야 하는 경우에 한해 특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 같은 중국 당국의 내국인 출국 제한 조치로 인해 중국인의 해외여행 자체가 금지된 청이나 다름없다. 사실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해외 유입을 차단하고 국내 확산을 막는 데 중점을 두면서 외국인의 관광비자 발급을 중단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중국인의 해외 출국을 통제하는 것은 방역 정책과 관련성이 적어 적잖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 공식화를 선언할 올가을 당대회를 앞두고 '칭링(淸零·제로코로나) 정책'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해야 하는 중국공산당의 속사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봉쇄가 아닌 '위드 코로나바이러스' 정책을 통해 팬데믹 이전 상황으로 회복하고 있는 중국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제기되고 있다.
润을 허할 수도, 润을 공식적으로 금지할 수도 없는 중국이다. 칭링과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구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봉쇄하고 차단하면서 인민의 중국 탈출 욕구를 자극하고 있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润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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