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는 서울에 오면 누구를 만나고 무얼 할까. 아마도 티빙 오리지널 예능 '서울체크인'의 기획의도는 단순했을 게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일상도 이효리가 하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게 바로 '서울체크인'이다.
◆"나도 서울 가고 싶어"
결혼 후 제주도에서 남편 이상순, 그리고 반려견들과 생활하는 이효리는 자주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도 서울 가고 싶어"라고 외친 바 있다. MBC '무한도전'에서도 유재석이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제주살이에서 벗어나 화려한 서울살이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았던 이효리의 떼쓰는 모습은 그 자체로 코믹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건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지 웃음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이효리의 진심이었다. 그의 이런 진심은 과거 자신의 SNS에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히고 싶지는 않다"는 그 유명한 말 속에도 담겨 있었다.
그런 그의 욕망이 먼저 발현됐던 건 MBC '놀면 뭐하니?'에서였다. 김태호 PD가 기획했던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린다G라는 부캐를 입은 이효리는 유두래곤(유재석)과 비룡(비)과 함께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카메라와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부캐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당시 제주도에서 반려견들과 자연주의에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던 '소길댁'은 서울에 와서는 화려한 라이프를 즐기는 '린다G'라는 부캐를 꺼내놓고 억눌린(?) 욕망을 마음껏 분출했다.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이율배반적인 것이면서도 공감 가는 것이었다. 이효리라는 솔직하고 대담한 캐릭터였기에 가능한.
MBC를 퇴사해 자체 제작사를 차린 김태호 PD는 첫 프로그램으로 바로 이런 여러 얼굴의 이효리를 선택해 '서울체크인'을 선보였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파일럿은 다분히 이벤트적인 성격이 짙었다. 즉 2021 MAMA에 출연하는 이효리의 뒷이야기들을 따라가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트렌드 세터로서의 이효리를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서사가 만들어졌다.
화보 촬영을 하고 나서 힙한 바에 들러 비와 함께 술 한 잔을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나래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지내는 이야기나, 은지원과 김종민, 신지, 딘딘과 함께 스키장으로 떠나 90년대의 추억 속에 빠져드는 이야기, 제주도에서 요가와 유기견 봉사로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서울나들이를 하며 1박2일간의 힐링 타임을 갖는 이야기, 또 남편 이상순과 홍현희, 제이쓴 부부의 집을 찾아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 등은 그저 일상적인 것들이었지만 충분히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건 특정한 사건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효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에 담긴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가 커서 생긴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김태호가 선택한 이효리
사실 MBC를 퇴사했다고 해도 그간 오래도록 유재석과 함께 해왔던 김태호 PD가 유재석이 아닌 이효리와 먼저 작업을 하게 된 건 다소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선택이다. 이제 홀로서기하는 김태호 PD로서는 유재석만이 아닌 다른 출연자들과의 협업과 그 성공 스토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효리도 과거 김태호 PD와 자주 작업을 함께 해왔지만 유재석만큼 본격적인 건 아니었다. 당연히 김태호 PD로서는 안전한 선택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이효리가 최적의 선택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건 관찰카메라에 포착되는 이효리의 모습이 유재석과는 사뭇 다른 지점들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이효리는 보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자신을 드러내는 편이다. 그는 가족도 친지도 심지어 친구들도 방송에 함께 나오는 것에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다 드러내놓고, 때로는 과감한 모습이나 이야기들도 피하지 않는다. 유재석 역시 리얼한 진정성을 매번 보여주지만, 그는 늘 특정 상황에서의 캐릭터쇼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서울체크인' 같은 리얼리티쇼에는 어딘가 넘지 못할 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이 있다.
중요한 건 이처럼 일상의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내면서도 이효리는 대중들의 호감과 공감대를 끌어간다는 점이다. 그건 자신만의 호감에 머물지 않고 함께 출연하는 이들에 대한 호감으로도 이어진다. '서울체크인'에서 지금까지 방영된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제주 친구들의 서울나들이를 보면 이효리는 물론이고 그 친구들마저 너무나 기분 좋은 사람들로 보이는데, 그 중심에는 이효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가 있어 주변이 같이 빛나는 느낌이랄까.
◆이효리의 가능성·김태호의 확장성
이런 점은 심지어 연예인들에게도 똑같이 생겨난다. 남편 이상순과 함께 이효리가 찾아간 홍현희, 제이쓴 부부에게서는 유쾌함이나 남다른 배려심 같은 것들이 유독 도드라지게 느껴진 건 이효리 덕분이다. 또 파일럿에서부터 즉흥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마련된 브런치 모임에서 화사, 김완선, 보아, 엄정화가 모인 일만으로도 반가워진 건 이 모임의 중심을 잡아준 이효리가 있어서다. 주변 사람들까지 빛나게 만드는 이효리가 가진 이런 매력은 향후 김태호 PD와 함께 꾸려나갈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즉, 브런치 모임에서 '여가수 유랑단'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고 그들이 다시 김완선의 집에 모여 집들이를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은 전형적인 김태호 PD식의 '일 벌이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방식은 과거 '무한도전'이나 '놀면 뭐하니?' 시절에 김태호 PD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누군가 툭 던진 한 마디에서 비롯돼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는 큰 사건(?)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미 MBC를 퇴사해 매주 방송을 고민할 필요 없이 프로젝트별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된 김태호 PD는 이제 '서울체크인'을 통해 이효리가 툭툭 던져놓은 것들을 가져와 '일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여가수 유랑단'은 '서울체크인'의 스핀오프로서 또 다른 독립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호 PD는 과거 '무한도전' 시절부터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한 갈망과 욕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아이템들은 시즌제 성격으로 이어가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MBC 소속으로 매주 방송을 내야 하는 구조적 조건 아래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각각의 프로그램처럼 완성도 높게 시즌제로 이어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체크인'을 티빙 오리지널로 제작하고 있지만, 언제든 여기서 파생된 다른 아이템을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이어갈 수 있으며, 나아가 타 플랫폼에서 이효리가 아닌 다른 인물과의 작업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산개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 또 다른 이야기로도 풀어낼 수 있게 됐다. '무한도전'부터 '놀면 뭐하니?'를 거치며 하나의 유니버스를 꿈꾸던 김태호 PD는 드디어 그걸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갖게 된 것이다.
'서울체크인'은 그래서 제주의 소박한 삶을 살면서도 서울의 도시라이프를 즐기고픈 이효리의 욕망이, 김태호 PD가 꿈꾸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고픈 갈망과 잘 맞아 떨어진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둘 다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고 그래서 향후 이들이 어떤 세계를 그려나갈 지가 궁금해진다. 김태호 PD가 유재석과 했던 그림과는 또 다른. 이효리와의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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