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집단지성의 적들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우리 사회는 지난 70여 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양 날개의 목표를 가지고 많은 대가와 희생을 치렀지만 지역·세대·남녀·노사 갈등은 치유되지 않고 악화일로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은 정치 리더의 잘못도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집단지성(集團知性·Collective Intelligence)의 회복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게다. 윤 대통령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하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임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스크럼을 짠 채 타협이나 양보를 적대시하고 각 진영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사생결단하듯 아귀다툼을 하고 있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편 가르기를 조장하고 어느 한쪽 편에 가담해 논쟁을 부추긴다면 국가든 사회든 조직이든 쇠락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런 유형의 리더였다.

집단지성의 위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속담이 "못난 갖바치 3명이 제갈량을 이긴다"는 말이다.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중지를 모은다'는 말을 종종 쓰는데 이 중지가 바로 집단지성이다.

집단지성이 자생적으로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리더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리더가 소신 있는 지도력으로 군중에게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선 패배 후 석 달도 안 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온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행보 때문에 야당이 시끄럽다. 이 의원은 대선을 지나면서 지지자 모임인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들'(양심의 아들)을 탄생시켰다. 개딸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성동일이 자신의 딸들을 부르는 애칭이었는데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2030 여성층을 지칭하게 됐다. 양아들은 2030 남성 지지층이다. 이들은 점차 조직화되고 행동화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 시절 '대깨문'이 오버랩된다.

이들은 이 의원을 비판하는 같은 당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날리거나 격렬한 대자보를 붙인다. 이 같은 지지자 모임은 전례에 비춰 봤을 때 맹목적인 지지로 이어지고 결국 '진실과 정의'와는 멀어져 집단지성의 적이 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옹호했다. 조폭 보스가 아닌 야당 리더의 말로서는 너무도 반(反)지성적이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지도자와 지지자를 '부모와 아들·딸'로 규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정상이다. 댓글 폭력에 대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이라고 했던 문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그래도 원조 격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는 어느 정도의 절제가 있었다. 문 전 대통령 시절 '대깨문'들이 상황을 악화시켜 바른 소리 하는 의원들을 '좌표' 찍어 조리돌림하고 문자 폭탄을 날려 반지성적 '팬덤 정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어떤 리더도 무오류일 수 없다. 언제든 지지를 바꿀 수 있어야 살아 있는 민주주의요, 그 뿌리는 건전한 집단지성에 있다.

강성 극렬 노조, 맹목적 환경단체, 특정 그룹에 치우친 시민사회단체 등도 집단지성의 적들이다. 우리 사회가 떼거리 본능으로 3~4년에 한 번씩 집단으로 이동하면서 벼랑 끝에서 집단자살하는 레밍(Lemming)을 따라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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