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식물 십자군

정홍규 지음/ 여름언덕 펴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한반도는 격동의 시대였다. 일제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고 이에 맞선 항일 투쟁 또한 뜨거웠다. 이같이 극심한 혼동의 사회 속에서 자칫 잊혀질 수 있는 한반도 식물 연구에 헌신한 이방인들이 있었다. 타케 신부(한국 이름 엄택기·1873~1952년)와 포리 신부(1847~1915년).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식물 채집을 통해 선교하고, 우리 민족과 함께 하면서 들풀 같은 삶을 산 타케 신부의 삶을 추적한 '에밀 타케의 선물'를 잇는 포리 신부의 이야기다. '에밀 타케의 선물'의 후속편인 셈이다. 전편이 타케 신부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현장 중심으로 전개한 것이라면, 이 책은 더욱 넓은 무대에서 활동한 포리 신부의 여정을 추적하면서 동아시아 각지로 진출한 식물 선교사 군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포리 신부는 봄이면 온 나라를 화사하게 장식하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처음으로 밝힌 타케 신부의 스승이었다. 두 신부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구상나무를 함께 찾아냈다. 포리 신부는 20대 중반 사제 서품을 받고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됐다. 일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다 돌파구로 식물 채집을 시작했다.

평생 동안 아시아 지역을 돌며 식물을 채집하고 표본을 제작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을 1901년, 1906년, 1907년 등 세 차례 찾아 1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서울, 목포, 원산, 평양, 제주도 등을 돌았다. 꽃 피는 식물은 물론, 양치식물과 선태류, 지의류 표본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그는 모두 6만2천440점의 식물 표본을 소장했다. 유럽에 보낸 셀 수 없이 많은 표본을 더하면 그가 평생 제작한 표본 수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 책은 포리 신부의 전기이기도 하지만 포리와 타케 두 신부가 소속된 파리외방선교회 얘기가 다른 큰 축을 이룬다. 지은이는 2014년부터 타케 신부에 대해 연구하다 그의 스승인 포리 신부에 대해 알았고, 두 신부를 연구할수록 당사자들이 의식했든 안했든 이들이 식민주의 경쟁의 한 방법으로 자원을 연구했고, 식물을 연구했음을 알게 됐다는 점도 털어놓는다. 27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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