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료와 관련한 재미있는 역설이 하나가 있다. 20세기 들어 인간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건 의학 때문이 아니라 영양과 위생의 개선 덕분이고, 의학이 중요해진 건 그만큼 질병을 겪는 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학이 인간수명 연장에 그다지 기여한 바는 없으나, 수명이 늘어난 덕분에 그 기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됐다는 얘기다.
사람들에겐 이런 의구심도 있다. 현대 의료가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없던 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에는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노환이 이제는 하나하나 질병으로 규정돼, 별로 낫는 일도 없이 비싼 의료 처치 대상이 된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환자에겐 고통만 더해진 게 아닌가. 의학은 이제 의학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이 책의 지은이는 "치료받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니라 현대 의료 자체"라고 주장한다. 의사로서 현대 의료에 대한 비판과 공공의료의 회복에 대한 글을 꾸준히 기고해온 그에게 의학은 삶과 죽음 자체를 의료화하고, 사람들에게 혜택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치는 문제적 대상이다.
특정 질병을 정복하겠다는 의사들의 헛된 공명심, 연구비와 승진을 위한 연구 활동, 유권자 요구에 아부하는 정치인들의 약속,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 복지 재원을 탕진하는 의료계, 무의미한 신약을 끊임없이 출시해 이익을 추구하는 제약산업, 가짜 건강정보로 소비를 자극하는 건강식품산업 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모두의 이익이 돼야 할 공공의료가 의료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바뀌고, 공공의 복지를 빨아들이는 깔때기가 됐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35년간 3개 국가의 병원에서 일하며 직접 겪고 목격한 현대 의학의 여러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청진기를 댄다. 현대 의료가 질병의 정복을 장담하기보다는 '연민'을 회복하고, 불가능한 완치보다는 고통 경감과 완화치료에 노력하며, 수명 연장보다는 호스피스 돌봄에 가치를 두는 참된 인간적 의료가 되기를 희망하는 지은이의 진심어린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의학의 본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곱씹어보게 하는 책이다. 344쪽, 1만8천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