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피소드로 읽는 전쟁 톡톡] 임란 최초의 승전 해유령 전투, 드라마 같은 신각 장군의 비운

드라마 징비록에서 신각 장군
드라마 징비록에서 신각 장군

"군영을 이탈한 죄인, 신각의 목을 처라!"

선조의 어명을 받은 선전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망나니가 분무질을 하듯 물을 내뿜으며 칼춤을 춘다. 부원수 신각은 망나니가 휘두른 칼끝에 목을 내맡겼다. 양주 게넘이고개(해유령)에서 왜적을 전멸시킨 승전 장군의 목이 순식간에 땅 바닥에 떨어졌다. 선혈로 얼룩진 장군의 얼굴을 감싸 안은 부인의 통곡소리가 산천을 울린다. 청렴하고 용감했던 노장의 주검에서 불빛 같은 서광이 어린다.

1592년 4월 그믐날 새벽, 임금은 서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궁중은 분분했고 날은 궂어 진종일 비가 내렸다. 사민들은 선조의 가마 앞에서 울부짖었다. "어린 백성과 종묘사직을 두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임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막는 백성들의 등을 칼로 내밀쳤다. 임금의 행차가 서울을 빠져나가자 궁궐마다 화염이 치솟았다. 벌겋게 불이 붙은 기왓장은 날개를 단 듯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 장군이 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선조는 도원수 김명원에게 한강을 방어토록 명하고 이양원과 신각을 부원수로 두어 보필케 하였다. 그러나 임금이 의주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명원은 곧바로 한강을 포기하고 임진강 방면으로 도망쳤다. 무관 출신의 담대한 신각이 '죽음으로써 한강을 지켜야한다' 고 거듭 충언을 하지만 도원수의 귀에 닿지 않았다.

지휘관이 떠난 전장을 신각 혼자서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신각은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도성 안으로 들어가 유도대장 이양원과 합류하여 일단 양주로 후퇴했다. 그 이후 함경도 부대와 협동하여 양주에서 파주를 거쳐 북상하는 길목인 해유령에 병력을 매복시킨다. 한양을 점령하고 선조를 좇던 왜군 가토 기요마사의 선발대가 양주 일대에서 군량미를 약탈하고 유월 그믐께면 해유령을 넘어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각의 예측은 정확했다. 부산에 상륙한지 이십 여일 만에 서울도성을 함락한 왜군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천혜의 해자, 한강마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건넌 왜군은 기고만장하여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헤쳤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신각 장군
드라마 징비록에서 신각 장군

절체절명의 기회를 포착한 신각은 유월 스무 닷샛날, 어둠이 깔릴 무렵 해유령에서 왜군의 정예장병 60여명을 통쾌하게 몰살시킨다. 왜란 발생 이후 최초로 이뤄낸 통쾌하고 값진 승리였다. 왜군의 북상을 저지케 함은 물론 왜군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내고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한 값진 승전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신이여!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방어에 실패한 책임을 고스란히 신각에게 뒤집어씌웠다. 악랄한 모함이었다. 한강을 버리고 임진강에 머물던 김명원은 선조에게 장문의 장계를 올린다.

"부원수 신각이 전장을 이탈한 까닭에 한강방어의 실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신각은 제 마음대로 다른 진으로 이동하는 등 상관인 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전장에서 불복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김명원의 모함으로 신각은 참수형에 처해질 신세가 된다. 그 후 삼 일 뒤 부원수 신각이 해유령에서 이뤄낸 통쾌한 승전소식이 선조 앞으로 당도했다.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생과 사를 결정지을 엇갈린 사건 앞에서 조정은 몹시 다급했다. 앞서, 군령을 어긴 죄인 신각을 참수토록 한 선전관의 임무를 중지하게 하는 파발을 급하게 띄웠다.

"참수를 거두어라!."

말의 발굽이 더딘 탓인가? 간만의 차이, 운명은 비켜나가고 말았다. 아! 애닯다. 운명이여! 차라리 드라마였다면 극적으로 살아난 신각이 개선장군이 되었을 것을.애통하기 그지없다. 나는 지금 그 선전관에게, 아니 역사 위에 다시 명령을 내린다.

"여봐라, 그 칼을 거두어라!"

<징비록> 속의 김명원과 신각의 인물됨은 현격하게 대비된다. 김명원은 그 위인됨에 비하여 모자가 너무 큰 사람,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 무능력하고 심지가 굳지 못한 가벼운 사람이요 반면에 신각은 청렴하고 신중한 무장으로 군사를 아는 목민관이다. 전란 속에서 충을 다한 무장의 죽음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신각의 운명이다. 죽는 순간 죄인이었으되 그 주검 위에 내려진 영원한 무훈, 임란 최초의 승전장군으로 기록되고 있다. 신각의 비운이 어디 역사 속의 이야기로만 남아있으랴.....

김정식
김정식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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