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장자에서 읽는 최재형과 이준석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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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내편(內編) 7, 외편(外編) 15, 잡편(雜編) 11의 33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외편 14 '천운'(天運)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공자가 50살이 넘어 도(道)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며 남쪽 패(沛) 땅에 사는 노자(老子)를 만나러 간다. 노자는 공자가 오자 북쪽 땅의 현자라는 말을 들어 잘 알고 있다면서 도를 깨우쳤느냐고 묻는다. 공자는 십수 년 도를 찾으려 애썼지만, 얻지 못했다고 탄식한다. 노자는 당연하다면서 이렇게 들려준다. "만약 도가 다른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왕에게 바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버이, 형제, 자손들에게 주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안 되는 이유는 마음속에 도를 받을 주체가 없으면 도가 와서 머물지 않고, 바깥에 정확한 대상이 없으면 도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아무리 좋은 목표를 말하더라도 목표를 이룰 진정한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공염불일 뿐이고, 이웃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조건과 상황을 갖추지 못했는데, 밀어붙인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장자' 천운 편에 계속된다. "물 위를 간다면 배를 타는 것이, 땅 위를 간다면 마차를 쓰는 것이 제일 낫다. 그런데 물 위에서 배를 움직인다고 해서 땅 위에서 배를 타려 한다면 죽을 때까지 밀어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조건과 상황이 안 되는데, 억지로 어리석게 밀어붙여 아무런 성과를 일궈내지 못할 때 '장자'에서는 노이무공(勞而無功), 혹은 도로무공(徒勞無功)이라 표현된다.

불가(佛家)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격화소양(隔靴搔痒). 중국 송나라, 명나라 때 지은 불교 서적, 특히 명나라 승려 원극거정이 지은 '속전등록'(續傳燈錄)에 나온 표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발바닥 가려운 사람이 신을 신은 채 긁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해 보려고 애는 쓰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점을 비유한다. 두양소근(頭痒搔跟)이라는 고사성어도 비슷한 맥락이다. 머리가 가려운데, 발바닥을 긁는다는 의미다. 일의 두서를 모르고 달려들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인천 계양을 공천, 경기도지사 단일화 국면에서 결정적 패착을 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우크라이나로 날아갔다. 엄중한 전쟁 외교에 아무런 권한도 없는 정당 대표가 달려드는 모습은 철부지 정치인의 치기라고 치부하자. 문제는 이 대표가 출국 전 던지고 최재형 의원이 덜컥 받은 혁신위원회다. 지금 전임 정부에서 망쳐 놓은 국정을 정상화하고, 민생을 회복시키기 위한 혁신 정책을 마련해도 모자랄 시기에 뜬금없이 공천 제도를 손본다며 전략 공천을 줄이겠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이 대표는 박근혜 키즈로 특혜를 입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단독 공천을 받고도 낙선한 인물이다. 느닷없이 대선에 뛰어들어 컷오프된 최 의원도 전략 공천으로 의원이 됐다. 혁신위 위원으로 맨 먼저 선임된 천하람은 이 대표의 측근이자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 캠프 핵심이었다. 태생부터 전략 공천, 자기 편 챙기기의 달인들이 전략 공천을 줄인다며 혁신 운운하는 모습에서 왜 도를 얻지 못하는지 지적하는 노자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길 잃은 혁신위를 바라보며 다시 '장자' 천운 편으로 돌아간다. "백조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칠하지 않아도 검다." 이제 까마귀를 정리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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