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까스로 방화 피해 면한 변호사와 사무국장…"무슨 말을 하겠나" 비통한 심정 토로

재판·모임으로 사무실 비워… 용의자 범행 예고 없었고 직원들은 얼굴조차 몰라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중요, 재발방지책 마련해야"

1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화재 현장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화재 현장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9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용의자의 소송 상대방 변호사 A씨와 사무국장 B씨는 자리를 비워 가까스로 화를 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무자비한 범행에 희생된 동료들에 대해 비통한 심정을 호소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방화 사건 당일 희생자 6명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A변호사와 B사무국장은 각각 재판과 모임으로 사무실을 떠나 있었다.

A변호사는 "포항에서 재판이 있었다. 오전 11시가 넘어 사무실에 전화했는데 연결이 안 됐다. 이어 40분쯤 후에 경찰이 화재 소식만 간단히 알려와서 '작은 불이 나서 연락이 안 됐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대구로 돌아오는 도중 다시 걸려 온 전화에서 경찰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알려줬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A변호사는 "경찰은 방화 사건이라며 원한 관계를 물어왔다.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B사무국장은 모임에 참석하느라 방화 직전 건물을 빠져나왔다. 모임 장소로 이동하던 중 경찰의 전화를 받았을 정도로 간발의 차이였다.

방화 용의자는 6년 가까이 진행된 재판마다 A변호사와 법정에서 마주쳤을 뿐 따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고 했다.

A변호사는 "소송 기간 거의 매번 법정에 왔던 걸로 기억한다. 변호사로서 변론만 했을 뿐 용의자와 직접 대화해본 적도 없다. 돌이켜보면 가슴 깊이 뭔가 꼬인 감정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뿐"이라고 했다.

B사무국장 역시 "지난해 6월 1심 결과가 나온 후 짧은 통화를 한 게 전부"라고 했다.

그는 "사무실 여직원이 통화하다 내가 전화를 넘겨 받았다. 용의자가 따지고, 우리는 달래는 상황이었는데 현재는 기억이 흐릿할 정도로 내용이 험악하거나 대수롭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다른 직원들이 더 연락 받은 것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사건을 의뢰한 사람이 패소했을 때 섭섭함을 표현하는 경우는 있지만 소송 상대방이 연락해오는 게 특이하다 싶은 정도였다. 왜 우리 사무실에 와서 그런 범행을 저질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이번 사고로 참담하고 막막한 심정"이라고 했다. A변호사는 "같은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참변을 당했는데 무슨 말을 하겠나. 어젯밤도 뜬눈으로 지새웠다. 심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비통해했다.

B사무국장은 "방금 빈소를 조문하고 왔다. 모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우선 잘 보내드리는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희생자 중 한 명은 나한테 일을 배워서 업계에 정착한 사람이다. 수십 년 간 함께 일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분간 사태 수습에 힘쓸 방침이다. 이들은 특히 유사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A변호사는 "변호사를 통해 국민들이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면 안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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