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공유의사결정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외래가 모처럼 북적거리고 있다. 이전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될까 우려해 외래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약을 받아 가던 고령의 환자들이 오랜만에 외래를 방문할 때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전우를 만나듯이 반가운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그동안 궁금했지만 직접 만나지 못해서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들을 쏟아 내기 시작하면 외래가 한없이 길어지고 만다. 특히 근거가 없는 민간치료에 대한 문의나 복용 중인 약제에 대한 의심스러운 이상반응을 문의할 때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미 예약된 환자가 뒤에 대기 중인 짧은 시간 안에 환자가 이해할 만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환자는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일어나기 일쑤이고 남은 외래를 보는 내내 뭔가 숙제를 끝내지 못했다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만족스러운 의사-환자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시간만 충분하면 되는 것일까?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는 가부장주의와 온정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의사-환자관계는 의료지식에 대한 불균형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의료지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가부장적이다. 또한 의사는 선의를 가지고 병든 환자를 도우려고 하기 때문에 온정적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의사-환자 관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혹시 '공유의사결정'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공유의사결정'은 환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여 치료 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의사와 '함께' 치료를 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우선 의사는 선택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와 종류, 장단점을 환자에게 투명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 이는 기존에 의사가 의료 지식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치료를 먼저 결정한 뒤 환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공유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의사가 일방적으로 치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결정에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고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선택한다. 이는 치료 결정의 주체가 의사에서 환자로 옮겨 가는 것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의사와 환자가 치료의 결정을 '함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환자가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고 의사는 이에 '동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가 치료를 선택했다고 해서 의사가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의사도 환자의 '선택'에 동의하고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치료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치료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환자의 참여가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연명의료처럼 복잡하고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로 의사가 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소비자주의 논리에 의한 것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가 가속화하면서 의료이용행태도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가 의료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 관계로 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된 환자는 더 이상 이전처럼 공급자인 의사의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자율적인 선택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의사들은 환자의 이러한 요구를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 불쾌한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환자들은 "공유의사결정"은 의사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복잡한 결정을 환자에게 미루는 것으로 이는 옳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공유의사결정"이 새로운 의사-환자관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의사-환자 간 신뢰 회복이 우선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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