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방송인 송해 선생의 부고가 전해졌다. 예상치 못했던 것을 접했을 때의 공황. 슬픔도 애석함도 표현하지 못한 채, 내 하루하루는 그렇게 무겁고 멍하게 흘러갔다.
달성군 옥포리에는 송해 공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상쾌한 바람과 잔잔한 물결, 무엇보다 송해 선생의 웃는 얼굴이 환하게 반겨준다. 작은 키에 통통한 체구, 선생의 서민적인 모습은 이웃 아저씨처럼 그저 즐겁기만 하다. 누가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구순이 넘었지만, 아이들조차 '송해~ 송해~' 한다. 선생은 평소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았다.
아이에게도 무릎을 굽혀 난만하고 익살스럽게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큰절을 하거나 같이 춤을 추거나, 흥을 돋우며 격려했다. 중년들의 아버지였고 오빠였고 형님이었다. 머리카락 희끗한 노년에게는 나이를 막론하고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박자가 맞지 않으면 출연자가 민망할까 봐 선생이 먼저 틀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어리숙한 척하며 그들을 추켜세웠다. 자기를 낮추어 타인을 섬기고 지지하며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선생의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은 매번 감동이었다.
각별한 인연이 있든 없든, 우리는 선생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한다. 선생은 말 그대로 큰 어른이었다. 선생으로 인해 마음껏 웃고 행복했던 우리는 모두 선생의 후예다.
우리는 흥이 많은 민족이다. 그런 우리가 흥을 잃었다. 늘 언제나 항상, 그 모습일 것 같던 이를 잃은 슬픔은, 한동안 온 나라를 침울하게 할지도 모른다. 길고 지루했던 코로나 팬데믹에서 우리를 다시 흥에 겨운 일상으로 데려다줄 유일한 분 송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외칠 것만 같다. '전국~' 선생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쾌활한 표정과 목소리, 손짓, 눈빛은 마지막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살라는 진심으로 남았다. 이제 우리는 선생의 유지(維持)를 받들어 스스로 즐거워져야 한다.
선생은 34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 오셨구려' 하던 故 정주영 회장의 말에는 만천하의 사람을 얻은 송해 선생에 대한 부러움이 묻어있었다. 망향의 아픔, 아들 잃은 슬픔을 누르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탈한 모습으로 기쁨을 선사한 송해.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에 오른 선생은, 만인의 큰 별이었다.
대통령은 몰라도 송해는 안다는 아이들, 선생으로 하여 우리들의 일요일은 따뜻하고 넉넉하고 구수하고 풍성했다. 한번 왔다 가는 세상,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황해도가 고향인 선생은 아내의 고향인 달성으로 와 영면에 들었다. 대구 시민들이 선생의 마지막 이승을 배웅했다. 옥연지 물결에, 바람에 송해 선생의 음성이 스몄다. '전국~' 선생은 여기, 송해 공원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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