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있지만 없는 아이들' 대구 미등록 이주 아동 190여명

미등록 외국인 신분 대물림…양육비·보육비 지원 대상 제외 '인권 사각지대'
“한국에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어요…아이 본국으로 보내고 생이별도"

지난 2월 만난 응웬티풍하이(왼쪽) 씨와 레티하(오른쪽) 씨 가족. 매일신문은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성서공단노동조합 노동상담소와 대구이주민선교센터, 이주와 가치 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등록 외국인 아동이 처한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명의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다. 배주현 기자
지난 2월 만난 응웬티풍하이(왼쪽) 씨와 레티하(오른쪽) 씨 가족. 매일신문은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성서공단노동조합 노동상담소와 대구이주민선교센터, 이주와 가치 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등록 외국인 아동이 처한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명의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다. 배주현 기자

우리 이웃에 살고 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 아이들. 국내 체류 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 부모가 낳거나 데려온 자녀들이다. 있지만 없는 유령 같은 존재로, 흔히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고 불린다.

'미등록 외국인' 신분을 대물림하는 이들은 대구에도 19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보통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인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때가 되면 보육시설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일 모두 쉽지 않다. 이주여성들이 출산 이후 생활고에 예방접종을 포기하는 바람에 폐렴 등에 걸리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미등록 신분에 외국인 등록번호를 받지 못해 온라인 사이트 가입이 불가능한 아이들은 코로나 시대 원격수업조차 받지 못했다.

매일신문은 대구에 거주하는 미등록 외국인 아동의 실태 파악을 위해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성서공단노동조합 노동상담소와 대구이주민선교센터, 이주와 가치 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키우는 가정을 찾았다.

대다수가 인터뷰를 거절했으나 베트남에서 온 응웬티풍하이(26), 레티하(40) 씨와 몽골 출신 나라(44) 씨를 통해 미등록 외국인 아동이 처한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기사에 실명을 사용하기로 했고 나라 씨를 제외한 두 명의 어머니는 사진 촬영에도 응했다.

대구 달성군에 거주하는 응웬티풍하이 씨는 6년 전 베트남에서 왔다. 한국에서 같은 고향 출신 남편을 만나 딸을 낳았지만 비자가 만료되는 바람에 미등록 외국인으로 살고 있다. 그녀를 따라 그의 아이도 미등록 외국인 아동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아이 교육에 문제가 생겼다. 응 씨의 딸은 엄마와 그림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딸이 좀 더 크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다. 달성군의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엔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다.

법무부는 지난 2월 국내 미등록 외국인 아동의 교육권 보장하기 위해 체류자격(D-4) 부여 대상 확대방안을 2025년 3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6세 이전에 한국에 들어온 아동은 6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면 체류 자격이 주어진다. 6세 이후에 한국으로 들어온 아동도 7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하면 된다.

응 씨 아이의 나이는 이제 겨우 2살. 법무부가 확대한 체류자격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2살 아이는 체류자격 한시 확대 종료 기간인 2025년이 돼도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는 '국내 거주 기간 6년 이상'을 충족하지 못한다.

아이를 받아주는 보육기관을 찾아도 문제다. 미등록 외국인이기에 정부의 양육수당, 보육비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결국 응 씨는 딸을 베트남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돈도 없고 한국말도 익숙하지 않은 응 씨 부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대구이주민센터 관계자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부들이 아이를 본국으로 보내고 생이별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최근 다시 만난 응웬티풍하이 씨 가족. 남편과 함께 베트남에 있는 딸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어려운 사정 탓에 딸을 제대로 기를 수 없었던 응웬티풍하이 씨 가족은 결국 딸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배주현 기자
최근 다시 만난 응웬티풍하이 씨 가족. 남편과 함께 베트남에 있는 딸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어려운 사정 탓에 딸을 제대로 기를 수 없었던 응웬티풍하이 씨 가족은 결국 딸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배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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