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랑한다 말 못해 미안해…" 대구 방화 참사 희생자에게 보내는 친오빠의 편지

화재 참사 피해자 6명 중 33세 여성…회생, 파산 업무 담당
친오빠 "동생 배려많고 착한 천사, 존경스러워"
걸음마 시작하던 동생 모습 너무 그리워

6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대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화재 참사 피해자 중에는 33세 여성 엄모 씨도 포함됐다. 사무실에서 회생, 파산 업무를 담당하던 사무직원이었다. 희생자를 떠나보낸 가족들은 떠난 이의 몫까지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아래의 편지글은 희생자의 친오빠와 매일신문 취재진이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대구 변호사 사무실 화재 참사의 33세 여성 피해자의 유품.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성경구절이 꽂혀 있다. 유족 제공
대구 변호사 사무실 화재 참사의 33세 여성 피해자의 유품.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성경구절이 꽂혀 있다. 유족 제공

'좋은 사람'

너와 어울리는 한 문장을 생각하다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네가 남기고 간 유품 하나하나를 만지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온 세상과 부딪혀왔는지 느껴졌어.

넌 남들 배려하기 바빴던 사람이었어. 사무실에서 회생, 파산 업무를 맡던 너는 어려움을 겪는 의뢰인을 위해 밤낮없이 고민했잖아. 새벽까지 의뢰인과의 전화를 놓지 못했던 모습도 기억나. 네 방에 빼곡히 꽂힌 책들이 그런 네 진심을 말해주는 것 같아. 책 안에 빼곡하게 적힌 글씨에 네 온기가 느껴져 마치 아직도 네가 공부하다 뒤돌아볼 것만 같아.

그런 너에게 오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잔소리만 한 것 같아. 진심은 아니었어. 6살 아래였던 동생이 그런 마음을 먹는 게 대견했고 존경스러웠어.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한 번 더 확신했어. 경황이 없어서 네 친구들에게 부고 소식을 알리지 못했는데 전국에서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울어줬어. 그리고 함께 말했어. 너는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배려하고 사랑했다고.

그래서 오빠는 이제 너와 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어. 네가 살다 가지 못한 남은 삶, 오빠가 남들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네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존경한다"는 말을 뒤늦게 내뱉어봐.

사랑하는 동생아. 오빤 요즘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오빠"하고 부르며 아장아장 걸어와 내 손을 잡던 네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늦둥이 내 동생, 우리 집에 온 넌 평생을 천사로 살았어. 부모님 속 한번 안 썩이고 잘 커왔던 너, 얼마 전 태어난 조카 미끄럼틀 사주겠다며 전화 걸어주던 너. 네게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도 잘하지 못했던 오빠는 이렇게 많은 것을 받기만 한 것 같아.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길 바랐고, 부모님 모시고 우리 가족, 네 가족 함께 여행도 다니고 싶었어. 지극히 평범한 일상조차 이제 사라졌다는 게 아쉽고 또 아쉽다. 뒤늦게 경찰한테 받은 뜨거웠던 불길 속에서 함께 있던 네 휴대전화. 뒷면에 꽂힌 '착한 일을 시작하라'는 성경 구절처럼 이제 우리 가족 모두가 네 몫까지 착하게 살께. 그러니 뒤 돌아보지 말고 훌훌 떠나. 애쓰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다 먼 훗날 우리와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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