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지방 소멸’ 부추길 수도권 첨단학과 증원

서광호 사회부 차장

최근 삼성이 향후 5년간 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샵 인근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삼성이 향후 5년간 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샵 인근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서광호 사회부 차장
서광호 사회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에 교육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통령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위해 규제에 얽매이지 말라고 질책했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그 시행령이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다. 이어 수도권 집중 심화와 지방대 위기 등의 우려가 나오자 교육부는 수도권과 비슷한 비율로 비수도권에도 첨단학과 정원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원만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비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8곳 중 3곳이 정시모집에서 미달을 기록했다. 서울의 대학이나 대기업 취업을 보장하는 '계약학과'는 인기가 높지만, 그렇지 않은 비수도권 사립대는 처지가 다르다.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에, 졸업 후 진로가 불명확한 학과는 외면받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무작정 정원만 늘릴 경우 오히려 대학에 부담이 될 뿐이다. 지난 정부 지침에 따라 첨단학과를 개설했다가 미충원이란 결과를 떠안은 대학들이 있다. 지역의 한 대학은 2021년 인공지능·로봇공학 관련 학과를 신설해 신입생을 모집한 결과, 충원율이 62.5%에 그쳤다. 또 다른 지역 대학의 경우 지난해 인공지능전공과 정보통신공학전공의 신입생 충원율이 각각 71.1%와 57.4%에 불과했다.

이 같은 낮은 충원율은 향후 정부의 대학 평가에서 약점으로 작용해 각종 지원사업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맞춰 학과를 만들었다가 되레 짐만 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대학들의 경쟁력을 더 약화할 우려가 크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학의 수도권 편중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종 지표가 이를 나타낸다. 특히 교육 투자에서 비수도권 대학은 취약한 형편이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사립대(일반대학)의 학생 1인당 국고보조금은 수도권이 386만 원인 데 비해 비수도권은 181만 원에 불과하다. 대구경북의 사립대도 고작 182만 원 수준이다.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규제를 완화한다면 수도권 집중은 더 극심해질 것이다. 이는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라는 국정 비전과도 어긋난다.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라는 국정 운영 원칙에 맞춰, 비수도권 대학에 대한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 같은 우려에 지역 시민 단체들도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반도체 인재 양성을 빌미로 수도권 대학의 첨단학과 정원을 늘리는 규제 완화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비수도권의 지방대에 반도체 인재 양성의 기회를 주는 한편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방대들은 당장 올해와 내년이 고비다. 2024년까지 학령인구가 급감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인구가 2021년 47만6천 명에서 2024년에 43만 명으로 감소한다. 진학률을 고려하면 이 기간 실제 대학 입학자는 42만 명에서 37만3천 명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현재 전국 대학 입학정원이 47만 명가량이어서 대규모 미충원 사태가 불가피하다.

이번 첨단학과 증원 논란으로 윤석열 정부는 시험대에 올랐다. 수도권 중심의 대학 구조를 탈피할 수 있을지, 지방 소멸을 막을 의지가 있는지, 지역균형발전이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실현 가능할지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권 초기에 잘 끼워야 할 첫 단추가 바로 '지방 소멸 극복'과 '지방대 육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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