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멜로 법정물 '왜 오수재인가'

고졸 여성, 나는 흑화 된 변호사…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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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SBS 제공

최근 들어 법과 정의를 다루는 법정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찌 보면 이제는 어떤 패턴이 느껴져 다소 뻔하게 다가오게 된 장르지만,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는 오수재라는 문제적 인물을 세움으로써 이런 한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또 법정드라마? 오수재라 다르다

아마도 장르드라마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법정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 수 있는데, 최근 들어 법정드라마는 너무 많이 등장해 새로운 접근방식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를 테면 '악마판사'같은 드라마는 전형적인 법정물을 넘어서 다크히어로화된 판사의 가상스토리를 엮고 있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닥터로이어'의 경우는 본래 천재 외과의였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의사면허를 잃게 되자 복수를 위해 변호사가 되어 나타난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즉, 무언가 새로운 게 없으면 법정드라마도 이제는 식상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가 나온다고 했을 때 "왜 또 법정드라마인가"라는 비판적 목소리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의뢰인과 새롭게 밝혀지는 진실 그리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반전 같은 것들이 이제는 하나의 정해진 공식처럼 기시감을 주는 게 법정드라마가 돼서 생겨난 반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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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SBS 제공

하지만 '왜 오수재인가'는 첫 회에 이런 다소 뻔한 전개에 대한 예상을 뒤집는다. 대기오염 수치를 허위보고한 기업의 내부고발. 흔히 이런 사건이라면 우리의 예상은 대기업의 횡포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내부고발자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과정을 떠올리고,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그 편에서 서서 기업과 싸우는 모습을 예상하지만 오수재(서현진)는 정반대다. TK로펌의 변호사 오수재는 의뢰인인 기업 편에 서서 내부고발자의 고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뒷돈을 받은 정황을 증거로 내밀어 고발자의 신뢰성을 뒤흔든다. 그 대기오염으로 뱃속에서부터 아이가 피해를 입었다는 한 엄마의 애끓는 토로에도, 그 아이가 사실은 입양됐다는 걸 찾아내 그 증언을 뒤집고 결국 기업이 승소할 수 있게 해준다.

'왜 오수재인가'는 그래서 인권과 서민의 편에 서서 싸우는 그런 변호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뢰인을 승소시키기 위해 뭐든 하고, 그럼으로서 TK로펌 같은 회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는 욕망 가득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이러한 흑화된 변호사의 이야기도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이미 '개과천선' 같은 법정드라마가 속물이 된 변호사를 내세워 그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 변화하는 이야기를 그린 바 있고, '하이에나' 같은 작품 역시 법의 윤리성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물들의 생존기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왜 오수재인가'는 그래서 '하이에나'와 비슷한 궤를 갖는 법정드라마로서, '하이에나'가 그려냈던 정금자(김혜수)라는 캐릭터에 대응하는 오수재라는 인물의 매력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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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SBS 제공

◆오수재에 담긴 유리천장의 그림자

그렇다면 어찌 보면 흑화된 변호사처럼 등장한 오수재의 매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고졸 출신에 여성인 오수재는 사실상 남성들이 전유하는 로펌에서 학벌과 성별의 차별을 겪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래서 신입 변호사 시절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회의에서도 쫓겨나고, 같이 밥도 먹지 않는 설움과 차별을 겪어야 했다. 그러니 그가 현재 보여주는 '독한' 모습은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오수재의 현실을 에둘러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 TK로펌 회장인 최태국(허준호)이 신임하는 변호사로까지 성장했지만, 대표변호사를 눈앞에 두고 또 다른 유리천장을 마주하게 된다. 대표변호사 선출에 힘을 싣는 고문단들이 대부분 여성인데다 출신성분이 없는 오수재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대신 최태국 회장의 눈치를 보는 그들은 그의 아들 최주완(지승현)을 대표 자리에 세우려 한다. 결국 오수재는 고문단 중 최태국과 공동운명체처럼 움직이는 한수그룹 한성범(이경영) 회장의 약점을 쥐기 위해, 그의 조카가 운영하는 회사의 비리자료를 턴다. 그 자료에는 한성범은 물론이고 최태국의 치부 또한 숨겨져 있다. 결국 최태국은 오수재를 대표 자리에 앉히려 한다. 오수재 스스로 유리천장을 깬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불법적인 일까지도 자행하는 과감함과 결코 약하게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은 그 밑바닥에 유리천장 안에서 생존해야 했던 현실을 밑거름 삼아 오수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구축된다. 그가 보여주는 욕망의 질주를 시청자들이 응원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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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SBS 제공

하지만 원했던 그 꼭대기에 오르려는 순간 오수재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로펌 의뢰인인 정치인에게 강간당했다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 소송을 포기하게 하려 했는데, 그가 건물 옥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마치 오수재 때문에 충격 받아 자살을 한 것처럼 오인되고 그로 인해 오수재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또 대표자리에서도 밀려난다. 결과적으로 최태국의 아들이 그 자리에 앉고 오수재는 로스쿨 교수로 밀려나 다시 로펌으로 돌아올 기회를 노린다.

이처럼 '왜 오수재인가'에는 이 문제적 인물에 드리워진 현실적 차별들을 보여주면서 그토록 흑화된 인물이 왜 그렇게 됐는가를 이해시키고, 그 부당함을 깨고 나가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특히 일의 영역에 있어서 여성들이 겪는 갖가지 차별들을 깨나가는 모습은 오수재라는 캐릭터가 강력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된다.

◆욕망의 질주인가, 행복 찾는 길인가

하지만 '왜 오수재인가'에는 법정드라마를 통한 워킹우먼의 성공기에 또 다른 축의 이야기인 멜로를 더해 넣는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됐을 때 신출내기 변호사 시절 오수재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공찬(황인엽)이 그 인물이다. 외모도 이름도 바뀐 공찬은 단번에 로스쿨 교수로 온 오수재를 알아보지만, 오수재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한다. 공찬은 과거와 너무나 달라진 오수재의 현재를 안타까워하며 본래 그의 본모습을 달랐다는 걸 그에게 상기시키려 한다. 그러면서 "좋아한다"고 자신의 마음을 대놓고 고백한다. 오수재 역시 그게 난감하긴 하지만 마치 잊고 있던 감정을 되찾은 듯 공찬에게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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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SBS 제공

일과 사랑. 여성들이 현실을 통해 얻고픈 두 가지 영역이 '왜 오수재인가'에는 이렇게 겹쳐진다. 특이한 건 일에 있어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거침없이 질주하던 오수재의 앞을 막아서는 건 바로 공찬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이런 서사구조가 말해주는 건 과거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이 그랬던 것처럼 성공을 향한 질주가 허무한 결말로 끝나고, 결국은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성공보다는 내 위치에서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걸 이 드라마도 표방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수재의 질주는 그래서 워킹우먼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며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동시에 그 아찔한 속도가 만들어낼 파국을 피해 연착륙시키는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이로써 일과 사랑 두 영역에서 모든 걸 쟁취하는 오수재의 모습을 그려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건 한꺼번에 손아귀에 쥘 수 있는 것일까. 윤리적인 선택들조차 치워버리고 질주해야 겨우 얻어낼 수 있는 유리천장 앞에 선 오수재에게 공찬이 "당신은 본래 선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건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아니면 걸림돌이 되는 일일까. 이건 이 드라마를 통해 오수재가 보여주는 욕망의 질주에 동승해 카타르시스를 얻고픈 시청자들에게 갑자기 끼얹어진 멜로가 되는 건 아닐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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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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