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춘원(6·25 참전용사) 씨의 전우들(화산 전투·파로호 전투 참전)

"6월이 되면 군번도 없이 스러져 간 전우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김춘원 씨와 파로호 전투를 함께 한 전우들. 사진 왼쪽부터 이규직, 홍덕숭, 남상욱, 현용환, 김재경, 김춘원 씨. 김춘원 씨 제공.
김춘원 씨와 파로호 전투를 함께 한 전우들. 사진 왼쪽부터 이규직, 홍덕숭, 남상욱, 현용환, 김재경, 김춘원 씨. 김춘원 씨 제공.

1950년 6월 25일, 저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3일 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다리가 폭파돼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 또한 혼란 속에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피난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고향 의성에 도착하니 8월 초순. 북한군은 고향까지 쳐들어왔고 가족들은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난 온 영천에서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며 피난 온 제 또래의 고향 사람들과 함께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됩니다.

1950년 8월 25일, 저와 고향 또래 친구들은 학생복 차림으로 군 부대를 찾아가 입대를 요청, 6사단 사령부 수색중대에 현지 입대해 1주일간 집총훈련, 사격훈련, 분대전투, 포복훈련 등의 훈련을 받고 전투에 나섰습니다. 한 마디로 총 쏘는 법만 배우고 전장에 들어간 것이지요. 첫 전투는 화산전투였습니다.

당시 제가 소속돼 있던 6사단이 육탄으로 적의 탱크부대를 퇴각시켜 북진의 계기를 이룬 전투였습니다. 저와 제 고향 친구들은 사력을 다해 적과 싸웠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적탄에 맞아 숨졌습니다. 군용 트럭 세 대가 실어보낸 전력은 돌아올 때는 두 대 분량의 사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화산 지역에는 시체가 너무 많아 불도저가 시체를 옆으로 밀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 중에는 같이 입대해 미처 통성명도 하지 못한 고향 친구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 때 유명을 달리한 전우들 중에는 군번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6·25 전쟁에 참가한 당시의 김춘원 씨. 김춘원 씨 제공
6·25 전쟁에 참가한 당시의 김춘원 씨. 김춘원 씨 제공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북진이 시작된 뒤, 제가 소속된 부대는 계속 밀고 나가며 평안북도 희천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대로 통일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중공군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중공군이 계속 밀고 내려오면서 국군은 강원도 춘천의 파로호에서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수색 작전 임무를 받고 출전하면 2~3일 동안 아군의 최전방 경계선을 넘어 적진 가까이 침투해 잠복해 적의 동태를 살피는 목숨을 건 작전이 계속됐습니다.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작전에 나선 전우들은 늘 작전에 나갈 때마다 "다시 못 돌아올 수 있다"며 마지막 인사처럼 작별 악수를 하고 떠났습니다.

저 또한 수색 작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적들의 집중사격이 시작됐고, 저와 수색대원들은 인근 논둑 밑에 있는 수로에 숨었습니다. 목숨을 겨우 보전한 우리들은 능선 쪽에 잠복, 적을 기다렸습니다. 밤이 됐고, 적군 1개 분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사격, 포로 1명을 잡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우리 수색대는 모두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6월이 되면 당시 수색대를 이끌던 홍재익 소령님, 홍덕숭 선임하사, 그리고 전우들이었던 김재경, 장병국, 현용환, 남상욱, 이규직 등 전우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화산 전투에서 스러져 간 고향 친구들, 통성명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군번조차 받지 못한 채 적탄에 숨진 전우들이 자꾸 눈에 아른거립니다.

이들 중 연락이 되는 사람보다 연락이 되지 못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전우들이 더 많습니다. 살아있다면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이제 망백의 나이에 드니 젊음을 나라에 바쳐 구국 전선에서 초개와 같이 산화한 전우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늘 그들이 염원하고 저 또한 소원하는 우리 민족의 자유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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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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