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효도

김한나 연극배우

김한나 연극배우
김한나 연극배우

어려서부터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는 결사반대하셨다. '딴따라'라는 그 시절의 부정적 인식과 함께 연예계에 대한 두려움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니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배우나 가수에 대한 꿈을 접고 만화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만화책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특히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학교 과제물도 만화로 그려서 내곤 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또 반대하셨다. 지금의 웹툰 작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던 그 시절의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셨던 것이다.

결국 모든 꿈을 포기하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장을 그만둔 후 대학에 편입해서 연기를 전공하게 되었다. 서른 살이 넘은 딸이 연기자가 되겠다고 하니 어머니도 더 이상은 반대하지 않으셨고, 지금은 누구보다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신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내가 하는 공연은 빠트리지 않고 다 챙겨 보며 주변 지인들에게 딸이 연극배우라며 자랑도 하신다. 가끔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왜 그렇게 못 하게 했을까'라며 미안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원망만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배우가 된 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약 5년 전 어머니께서 예전부터 좋아했던 유명 국악인과 문경에서 함께 뮤지컬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잠시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분과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울에서 문경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공연이 끝난 후 그분께 어머니와의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고 흔쾌히 응해주셨다. 오래전부터 동경해오던 연예인과 함께 사진을 찍으러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는 어머니는 그야말로 열두 살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한동안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저장되어있기도 했다. 소녀같이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그때 처음으로 '배우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광고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등을 촬영을 하기도 하는데, 어머니는 TV에 내가 나올 때마다 영상을 저장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링크를 보내며 자랑하신다. 어찌나 주변에 자랑을 많이 하시는지 어떨 땐 마치 내가 유명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더 많이 생기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든 당당하게 내 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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