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평은 이미 누군가 써 놓은 텍스트를 읽는 행위 그 자체에서 시작한다. 그 텍스트가 도시라면, 그 도시 사용자들의 낯선 걷기 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도 하나의 비평으로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가,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에는 그 도시의 집단적인 흐름과 어딘가 맞지 않거나 속도에 뒤처진 듯한 이들의 움직임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성장과 개발,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지배적인 이 도시에서, 우리는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다른 이야기들에 귀 기울임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시에 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늘 그렇게 소수의 구체적인 몽상이 전염병처럼 번지면서 이어져왔기에.
몇 년 전 도시비평서의 한 꼭지를 맡은 적이 있다. 도시를 비평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거듭 생각하며 글을 다듬었지만, 결국 그 비평은 '나'의 도시 비평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해야겠다. 인류학에서는 현지 조사가 연구의 근간을 이루며 그 조사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연구자' 자신이라고 한다. 인간이 인간 사회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완벽한 멸균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어떤 연구 결과든 연구자의 관점과 맹점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연구자 자신의 경험의 서사 속에서 구체성과 추상성을 오가며 기술할 때라야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류학적 비평이란 연구자 자신이 속한 문화적 고리 속에서 특수성에서 보편성에 이르는 통찰을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도시란 집단의 기억이 씨실과 날실로 교차하여 만들어진 그물망이지만 결국 그 그물망을 포착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라는 1인칭 시점의 주관성이다. 자신의 도시를 읽어내지 못하면, 그 도시는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도시'가 되고 만다. 도시의 틈새를 찾아내고 그것을 가로지르는 감각은 그래서 언제나 오롯이 자신을 관통해서 만들어지며 그러한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 낼 때라야 그 도시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견지에서 도시비평서에 담긴 글은 '나'라는 객체가 대구를 중심으로 '어떤 도시'를 걷고 탐사하며 재발견한 경험의 과정에서 '그 도시'에 주체적으로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 '이 도시'와의 만남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에서 시작됐다.
최근 도시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문화도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여러 지역에서 시민 참여형 도시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무척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전문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기존 역사나 국사, 지방사에서 누락되거나 제외된 기억과 감정, 사실, 삶 등을 기록하는 주체로서의 시민들을 호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카이빙 대상이나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다양한 도시 행위 주체들의 협력적 체계에 의해 수집되고 생산되는 기록을 통해 '소실된 이야기'를 불러들이고 '부족한 사실'을 극복할 수 있는 관계망이 형성되리라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도시 문법 너머 도시를 새롭게 읽고 쓰는 집단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주체들의 1인칭 도시 비평이 등장하는 것이다. 도시 아카이브란 거대한 이야기를 위한 기억의 저장고가 아니다. 참여자 각자의 도시 이슈를 찾고 어젠다화하는 캠페인에 가깝다. 시민 각자 '자신의 도시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표현하는 활동인 것이다. 그렇기에 도시 아카이브는 '마침표'가 있는 결론이 아닌, 계속되는 '세미콜론'일 때 비로소 진짜 의미를 갖는다. 모쪼록 마주침과 발견의 가능성으로 두근거리는 도시 비평의 장이 곳곳에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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