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에 이은 지방선거를 끝으로 향후 2년간 재보궐선거를 제외하고는 큰 선거가 없다. 선거 기간 중에는 유권자들에게 머리를 숙여 가며 무엇이든 해줄 것처럼 살살거리지만, 선거가 끝나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제고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된다. 그래서 선출직은 예로부터 '동냥벼슬'이라고 불렀다.
동냥벼슬을 하려니 선거 때마다 여야 공히 부르짖던 구호가 '정치개혁'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정치개혁의 의미는 입장에 따라 정반대가 된다. 서로 자신들의 개혁안만 옳다고 주장하니, 듣는 유권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한국 정치를 관통해 온 이념이나 가치, 갈등 구조에 따라 어느 한 쪽을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반지성주의가 판을 친다. 여기에는 짧은 지식을 악용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일방적으로 옹호해 온 어용 지식인의 영향도 크다. 또 어떻게든 언론을 통해 이름을 알려 한 자리 해보려는 기회주의자들도 한몫을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너나없이 추한 경쟁을 하니 정치개혁은 정치인들이 모두 사라져야만 가능하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우상호 비대위원장을 선임해 향후 전당대회를 준비 중이다. 우 위원장은 최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여당을 상대로 그 사건이 왜 중요한 일이냐고 반문하며 민주당은 진상규명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것이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우 의원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지 의심할 정도다. 국민이 공무수행 중 실종돼 북한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다면 이는 국가에 의한 불법 폭력행사다. 그것을 만일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지시했다면 이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반역 행위다. 그런데 먹고사는 현안이 아니라는 야당 비대위원장은 제정신인가.
대선 승리로 소수 여당이 된 국민의힘도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오십보백보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20일 만에 치러진 제8회 지방선거는 언뜻 보면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수도권 기초단체장에서 우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24대 1로 졌던 것을 생각하면 17대 8은 균형을 찾아간 것이라고 해야 한다. 서울과 경기도의 광역의회는 여야가 거의 5대 5 균형을 이루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지방선거 승리 이후 국민의힘의 내부 분열은 더욱 가관이다. 이준석 대표는 선거 승리 직후 뜬금없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고, 이를 두고 내부 비판이 일어나자 당 대표가 서열이 더 높다면서 위세를 떨었다. 지금까지는 안 그랬던 것처럼 이제부턴 자기 정치를 하겠다고 공개 선언까지 했다. 당 대표와 의견이 다르면 대표를 흔드는 것인가. 대선에서 이 대표의 공이 없었다고 하진 않겠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친 이 대표의 '자기 정치'로 인해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는 진땀을 뺐다. 그것으로 인해 더 큰 폭으로 압승할 수 있었던 선거가 불과 0.73% 차이의 신승으로 막을 내린 것은 아닐까.
정의당은 또 어떤가. 민주당과 야합해 선거법 개정을 통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고자 했지만 결국 탈법적 비례 정당의 출현으로 무산된 것이 엊그제다. 국민의 선택 폭을 확대해 소수 정당의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기초의원 선거에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그토록 주장해 온 정의당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입된 중대선거구제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창당 이래 최대 실패를 맛보았다. 선거법을 어떻게 바꾸어도 정의당 후보가 선택되지 못한 것은 결국 대안 정당으로서 유권자들을 설득할 후보와 공약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정당들은 정치개혁을 입에 달고 산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들이 주장하던 것을 여야가 바뀌어 상대방이 주장하면 이내 반대로 돌아서는 것이 이 나라의 정치권이다. 그런 그들에게 국민은 무엇인가. 선거 때 표를 주면서도 매번 속고만 사는 어리석은 호구인가. 더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정치를 맡길 수 없다. 이렇게 앞뒤가 다른 사람들을 현실 정치에서 몰아내는 것만이 진정 정치개혁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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