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리를 위한 용기, 사과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 수필가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아쿠아'(Aqua)를 듣는다. 잔잔하게 흐르는 선율뿐, 그래서 더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나는 사카모토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이 대중에게 사과했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소품 중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사카모토의 '아쿠아'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유희열은 무의식중 표절을 인정하며 공식 사과했다. 그의 빠른 사과는 용기였고 진심이었다.

사과란 무엇인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에 대해 대가를 치르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과를 거부한다. 사과는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편협된 생각 때문이다.

수년 전, 어떤 이는 자신을 음해한 사람이 나라고 지목해 경찰에 신고했다. 그와 나는 몇 년 간 연락을 하지 않던 사이였다. 뜬금없는 항변, 형사 명함까지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압박했으니 내가 얼마나 겁을 먹었겠는가. 무엇보다 나를 행위자로 지목한 데 대한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그릇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특정 부류의 활동을 모두 접겠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당장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지키지도 못할 말부터 뱉어버린 것이다.

종종 TV에서 여러 사건을 접하게 된다. 사과하지 않고 버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거나 CEO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사과는 쉽지 않다. 그깟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뭐라고.

요즘 '사과'에 대해 생각이 많다.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되고, 그에 따라 여러 형태의 사과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그릇된 행위로 인해 사과받기도 한다. 근래 어느 어른의 사과를 받았다. 그간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상처가 깊었던 내게 그분의 사과는 의외였다. 너무 늦은 사과였기에, 받아들이는 동안 무척 괴로웠다. 그러나 한참 어린 내게 사과하기까지 그분도 많이 힘드셨을 테고, 큰 용기가 필요했음을 짐작한다. 그분의 사과 후 나는 그간의 고통이 씻김을 받듯 조금씩 평안해지고 있다.

사과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과에도 방법이 있고 기한이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처럼 '미안해,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 지는 것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내가 한번 숙여주면 만사 평안해지는 이유다. '평생 칼날을 갈며 이날을 기다렸다.'는 복수극의 대사처럼 절망적인 결말을 누구도 원치 않는다.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용기인가. 미안하다면 더 늦기 전에 바로 정중하게 사과하자. 내 진심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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