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백종원의 극한요리 도전

tvN ‘백패커’…서바이벌 접목한 출장 요리 도전기
가방 하나에 식재료 짊어지고 미션 수행…낯선 주방이 만드는 이색 풍경 신선
먹방·쿡방 거치며 브랜드 된 백종원…진화하는 방식 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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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백패커' 포스터 이미지. tvN 제공

'배낭 하나 짊어지고 전국 팔도에서 요청한 출장 요리에 도전한다?'

어찌 보면 과거 오지를 찾아 요리를 해주곤 하던 여행 예능의 확장판 같다. 하지만 백종원이어서 가능한 극한 요리 도전은 마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백종원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사실 백종원은 떠난 적이 없다. 다만 그간 그의 대표적인 방송으로 자리했던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종영한 후 다소 주춤했을 뿐이었다. 여전히 그는 KBS에 음식 '랩소디' 시리즈인 '냉면 랩소디', '한우 랩소디', '삼겹살 랩소디'에 프리젠터로 활약했고, 티빙 오리지널 '백종원의 사계'로 지난 2월까지 전국 각지의 제철 식재료를 즉석에서 요리해 먹는 캠핑 콘셉트가 더해진 요리, 먹방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리고 지금도 KBS '백종원 클라쓰'에 출연해 대한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만 이들 프로그램이 한때 '골목상권의 구세주'로까지 떠올랐던 백종원의 존재감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그가 tvN '백패커'로 돌아왔다. 연출자는 이우형 PD로 과거 '현지에서 먹힐까' 시리즈를 통해 해외에서 '쿡방'과 '먹방'을 선보인 바 있다. 백종원은 이우형 PD와는 직접적으로 방송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집밥 백선생'부터 '먹고 자고 먹고', '스트릿 푸드 파이터' 등의 프로그램으로 tvN과는 계속 인연을 맺어왔다. 특히 '백패커'의 CP로 참여한 박희연 PD와는 '집밥 백선생3'부터 인연을 맺어 '스트릿 푸드 파이터'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백스피릿'을 만들었던 인연이 있다. 그만큼 백종원도 기대하는 제작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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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백패커' 의 한 장면. tvN 제공

기대만큼 '백패커'는 기획이 눈에 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요청에 맞춰 배낭에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준비해서 제한된 시간에 맞춘 출장요리를 선보이는 것. 제목처럼 '백팩'이라는 기획 포인트 하나에 출장요리라는 콘셉트가 심플하게 담긴 아이템이다. 기획은 심플하지만 실제 펼쳐지는 미션은 의외로 '스펙터클'이다.

첫 번째 미션으로 주어진 정읍 칠보 씨름부는 만만찮은 식성을 보여주는 씨름선수들을 패스트푸드로 만족시켜야 한다는 관전 포인트를 잡았지만, 사실 그리 이 프로그램이 어떤 색다름을 보일 것인가는 아직 잘 드러나지 않았다. 백팩에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준비해간다는 '포장'을 빼고 보면, 과거 tvN '고교급식왕' 같은 요청에 맞춰 대량요리를 해내는 아이템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회에 산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그곳을 찾는 불자와 등산객을 위한 점심 공양을 마련해야 하는 미션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극한 요리'의 정체를 드러냈다. 요리를 하는 것보다 바리바리 배낭에 재료와 도구들을 잔뜩 짊어지고 등산을 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고, 산사라 돼지고기도 오신채에 해당하는 양파도 쓰지 않고 짜장면을 만들고 채식 탕수육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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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백패커'의 한 장면. tvN 제공

◆변수 가득한 요리 서바이벌

도시에서의 요리란 어디서든 식재료를 쉽게 구하고 또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백종원 같은 요리연구가에게는 아무런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방송이 더 이상 과거만큼 흥미진진해지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즉석요리를 너무나 쉽게 척척 해낼 때마다 환호하던 시청자들은 그런 광경이 반복되면서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골목식당을 찾아 솔루션을 주는 과정들도 점점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흥미가 빠지기 시작했던 것. 그래서 백종원에게는 어느 정도의 휴지기를 통한 일종의 '쿨타임'이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백패커'가 가진 극한요리라는 도전의 세계는, 요리연구가이자 방송인으로서 그의 진가를 다시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아닐 수 없다.

익숙한 주방이 아닌 타 주방에서의 요리는 의외의 변수를 발생시킨다. 산사에서 요리를 할 때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려워 기름 자체가 타버리자 이를 식히기 위해 전분 반죽을 넣어 온도를 내리고 심지어 물을 조금씩 부어 문제를 해결하거나, 애초 예상했던 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찾아오자 남은 재료를 갖고 즉석에서 나눠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내놓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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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백패커'의 한 장면. tvN 제공

이러한 변수들과 극한 요리의 느낌은 갈수록 강해진다. 바다 한 가운데서 기상을 위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기상선에서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낸 세계요리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조리라는 색다른 광경을 가져왔고, 이색적인 풍광 속에서의 파티가 연출됐다. 그리고 드디어 '백패커'는 어쩌면 처음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아이템이었을 '군대 출장 요리'를 가져왔다. 간부식당에서 요리를 했던 것이 자신의 '초심'이라고까지 밝혔던 백종원이 다시 군대를 가서 요리를 한다는 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백종원을 돕는 오대환 역시 군대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고, 안보현이나 딘딘도 남다른 군 경험들이 더해지니 이 미션은 '서바이벌'의 긴장감은 물론이고 군대 관련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설렘이 더해진 도전이 됐다. 군대라는 소재와 잘 엮어낸 프로그램의 힘은 시청률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최고 시청률 4.7%(닐슨 코리아)를 찍은 것. 그래서였을까. '백패커'는 다음 아이템으로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들어가는 최전방 군부대를 방문하는 군대 미션 2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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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백패커'의 한 장면. tvN 제공

◆배낭이 무거울수록 존재감도 커진다

사실 백종원은 하나의 캐릭터로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먹방과 쿡방 그리고 솔루션 방송까지 이어지면서 백종원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 하지만 너무 음식 소재 방송 프로그램들을 연달아 쏟아내다 보니 그 캐릭터 소비도 빨라진 게 사실이다. 그는 여전히 블루칩으로 불릴 정도로 방송을 잘 하지만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어느 정도의 쿨타임은 필요한 법이다.

'백패커'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백종원에게는 그 색다름을 좀 더 각인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어느 정도의 '극한 요리'라는 콘셉트가 들어가 있지만, 그보다 더 나가는 '요리 무한도전' 같은 실제로 백종원에게 도전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확대시켜야 더 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저런 상황에서 요리가 가능할까 싶은 그런 환경들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미션들이 이뤄진다면 다소 지지부진해 보이는 백종원 브랜드가 '야생의 느낌'을 더해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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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백패커'의 한 장면. tvN 제공

백종원은 또한 이제 방송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의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선별할 필요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 조금이라도 기존 이미지를 소모할 것 같은 아이템들은 피해야 하고 대신 자신이 하지 않았던 영역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확장해나갈까를 고민해야 한다. '백패커'는 그런 점에서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그저 평이한 선택에 그칠 수도 있는 기로에 선 방송 프로그램이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편한 길이 아닌, 어려워도 해야만 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그램이 사는 길이고, 나아가 출연자들의 이미지들을 모두 제고할 수 있는 길이다. 그들이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그들의 존재감은 커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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