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절도죄

김아가다 수필가(2021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시골로 귀촌한 지인이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파를 뽑아 물기를 말리는 중인데 화물차 한 트럭분이 간밤에 없어졌단다. 일손이 모자라 팔순 노인들까지 동원해서 작업을 했건만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웃들도 안타까워서 농작물 도둑은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술렁거리는 동네 사람들 얘기를 듣고 있다가 지난 가을이 떠올라 뜨끔했다. 송내 마을 올라가는 길목에 감나무 밭 담장이 탱자나무로 둘러져 있었다. 탱자를 보면서 내 눈이 반짝거렸다. 몇 개쯤 실내에 두고 싶은 욕심은 기억 속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 탓이다.

자동차를 길가에 세우고 탱자나무에 매달렸다. 탱자 따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시에 찔려가면서 몇 개를 땄다. 한참 탱자에 정신 팔렸는데 찢어지는 금속소리가 '끼익' 하고 났다. 남자가 자전거에서 부리나케 내렸다. 그는 노란 얼굴로 숨을 헐떡이면서 생난리를 쳤다. 초록색 새마을 모자 속의 눈빛은 살기가 돌았다. 나는 훈육주임 선생님께 걸린 학생처럼 손에 탱자를 쥐고 차렷 자세로 촌로 앞에 서서 벌벌 떨었다.

"농산물에 손을 대면 벌금에 구속이요!" 나는 구속이라는 말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남자의 굳었던 인상이 살짝 풀리는가 싶었다. 탱자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바닥에는 이미 떨어진 흙 묻은 탱자가 자부룩하게 깔려있었다.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살다 이렇게 심한 봉변은 처음이었다. 심보가 고약한 것 같았다. 그깟 탱자 몇 개 땄다고 그렇게 몰아세우다니.

탱자가 농산물이 아닌 줄 남자도 번연히 알고 있을 터이다. 그렇지만 탱자 한 개라도 마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은 심정 아니겠는가. 낯선 사람이 어슬렁거리면 주민 모두가 주인의식으로 마을을 지킨다. 마을 입구에 정말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농작물에 손을 대면 절도죄로 벌금 이백만원이며 구속입니다." 바람에 펄럭거리는 현수막이 나를 보고 웃는 듯했다.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농작물 절도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 나도 같은 생각이다. 탱자 몇 개 따려다가 엄청 혼이 났는데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을 두꺼비 파리 삼키듯 꿀꺽한 파렴치범은 어떤 중벌로 다스려야 할까.

소위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서 작게는 3배, 또는 그 이상 배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농산물 절도는 단순 절도가 아니라 농민의 피땀을 훔치는 특수한 절도이므로 지인의 양파 농사를 5년쯤 대신 짓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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