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영혼의 울림이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최경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 삶이라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항해하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로는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한 이를 만나고 그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그리고 조절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 그 인연조차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럴 때 사람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미처 보지 못했던 면이 있었던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마음의 물결은 점점 부정적인 웅덩이에 빠지게 된다. 헤어나오기 힘든 깊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며, 지금까지 그의 친절했던 행동과 말의 진실성조차 의심받게 된다.

사람의 마음에는 저울이 있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작은 주머니들 사이에 중심을 잡는 마음이라는 중심추가 있는데, 바로 이때 부정적인 주머니에 무게가 실리게 되면 좀처럼 긍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어렵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아름다운 날들의 기억이 갑자기 불이 꺼진 영화관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으로 변하고, 신뢰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키워왔던 사랑의 나무들이 하나둘씩 시들어간다.

사람이 신이 아닌지라 미처 알지 못하는 상대의 진심을 알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그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헤어지는 인연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헤어지는 사람들의 마지막 한마디는 '너무하다'라는 표현이 공통분모로 항상 들어있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관계의 중심추,신뢰

혹시 성악설(性惡說)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말이다. 이 뜻은 잘못 이해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로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으로 기우는 경향을 지닌다.'라는, 즉 앞서 말한 마음 기울기를 조절하는 중심추가 부정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관계의 중심추는 바로 무엇일까? 여러 생각들 속에서 다양한 답들이 나오겠지만, 신뢰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업이든 사랑이든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는 관계로부터 시작되고 그 중심에는 신뢰라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

신뢰가 없으면 결코 희생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다. 어제까지의 장기간 출장을 마치고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짧은 전화 한 통화에 웃으며 나갈 수 있는 것도, 피곤함에 눈은 감기고 목까지 부은 날에도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가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희생이며 그 기조에는 신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관계란 깨진 유리창과 같이 한번 금이 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불신의 웅덩이에 빠지면 긍정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과 신뢰가 가득했던 시간들 사이에서는 쉽게 긍정을 바라볼 수 있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강력한 사랑이라는 호르몬이 방패가 되어 관계를 지킨다.

하지만 큐피드의 화살이 빠질 무렵이면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참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힘든 상황일수록 긍정만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이혼율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수를 생각해본다면 위기 관계일수록 긍정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쫓기는 삶을 살지 말라

깊은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쉽지 않다. 고속엘리베이터처럼 버튼 하나로 지하동굴에서 탈출하면 좋겠지만 그런 기술이나 약은 아직까지는 없다. 본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인연이라는 문에 쉽게 들어갈 때와 달리 나올 때는 힘들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라 조바심을 내지 않고 하나씩 풀어나가야 비로소 매듭을 풀 수 있다.

조바심에 대하여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쫓기는 삶을 살지 말라".

어떤 일에 생각이 매몰되어 있다보면 마음이 항상 바빠진다. 마음이 바빠지면 여유가 없어지고 늘 불안이라는 그림자가 함께 길게 드리워진다. 사업적인 부분이야 효율성과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지만, 우리 마음은 반대의 경우를 가진다. 마음에 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눈에 꽃도 보이고 그 향기를 맡으려 허리를 숙이기도 한다.

주인과 객이 전도되면 삶이 힘들어진다.

세상 모든 만물은 한곳에 머무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진실하면 된다. 떠나는 인연은 더이상 당신에게 그 어떤 의미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주인 되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한다. 인연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은 그저 당신이란 소설에서 이제 퇴장하는 손님, 객(客)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시각과 기대에 삶을 맞추면 늘 당신은 부족한 사람이 되고, 무엇에 쫓길 수밖에 없다.

인연이라는 문. 항상 하나의 문이 닫혀야 다른 문이 열리는 법이다. 하지만 아직 과거에 서성이는 당신은 스스로 닫을 용기를 쉽게 내지 못한다. 그리고 새로운 문이 열릴지에 대한 걱정으로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의미 없는 추억을 꺼내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싫어한다. 그러기에 멀어져가는 사람의 자리에 빨리 새로운 사람을 넣으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욕심이다. 인연의 문, 하나가 닫히어야만 새로운 문이 열리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의 외로움을 즐겨야 한다.

사랑과 헤어짐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의 고민에 대하여 내 생각을 담아 새벽 글에 녹여본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울림이 없다.

영혼의 울림이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법정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최경규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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