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尹 "경찰 인사번복, 국기문란 탓" 쐐기…"경찰 길들이기" 의혹 일파만파

"인사 번복 2번 발표는 경찰 책임"…'행안부, 잘못된 초안 왜 보냈나' 의문 여전
경찰청장 거취까지 거론…김창룡 "행안장관과 면담 희망", 이상민 "조사? 생각해보겠다"

행정안전부가
행정안전부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권고안을 이상민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사실상 '실행'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부처 안에 인사 등 경찰 관련 업무를 담당할 지휘조직인 이른바 '경찰국'을 신설하고,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을 제정하는 등 경찰 통제 강화 방안 추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사진은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 연합뉴스

정부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 속 경찰국 신설을 선언하는 등 경찰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는 타이밍에 '경찰 치안감 인사번복' 사태가 벌어졌다.

인사번복이 일어난 내막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경찰의 '국기 문란'이냐, 정부의 '경찰 길들이기'냐를 두고 양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경찰 책임론' 쐐기 박는 尹·행안부…대통령실 "대통령 의중 충분히 설명"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경찰 치안감 인사 발표가 2시간 만에 번복된 사태를 가리켜 "국기문란"이라고 규명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부는 잘못이 없다, 경찰이 잘못했다'고 못박은 셈이다.

행안부에 연락책 격으로 파견된 치안정책관(경무관)도 전날 오후 "이번 사안은 중간 검토단계의 인사자료가 외부에 미리 공지돼 발생한 혼선이고, 행안부가 최종 결재안을 정정하거나 번복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입장을 냈다.

윤 대통령도 이에 대해 "경찰이 앞서 자체적으로 행정안전부에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해버린 것"이라고 행안부를 두둔했다.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도 일각에서 나오는 '경찰 길들이기' 의혹에 일관되게 선을 그으며 "인사안을 수정하거나 변경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중대 실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이날 윤 대통령이 내놓은 메시지가 김 청장에게 책임(용퇴)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냐는 물음에 "그것까지 가능하다 아니다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상세히 설명하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질문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현재까지는 경찰이 잘못된 인사안을 발표했다가 이후 번복된 상황에 대해서만 드러나 있고, 정부가 경찰에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된다.

인사 전후 상황을 보면 경찰청은 21일 오후 4시쯤 행안부로부터 치안감 인사 예고를 들었다. 치안정책관이 오후 6시 15분쯤 초안을 보내 경찰청이 7시쯤 내부망에 공지했다.

당시 이 장관이 귀국을 앞두고 초안을 보내 인사비서관실과 조율하고, 귀국 후 최종안이 나오면 결재를 올릴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초안이 최종안으로 나가는 실수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 인사 논의는 치안정감 내정 발표 직후부터 시작됐고, 대략적인 초안은 이 장관 출장 전에 보고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같은 날 8시 38분쯤 치안정책관이 전화로 수정 요청을 하고서 다시 최종안을 보냈고, 이후 확인 과정을 거쳐 9시 34분쯤 내부망에 재공지했다. 10시가 되기 조금 전 대통령이 결재했다.

행안부는 당시 담당자가 왜 처음 잘못된 안을 보냈는지, 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가 1차 인사안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다가 번복된 인사에서는 한직으로 빠졌는지, 이 과정에서 외부의 또 다른 개입이 있었는지 등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인사가 난 치안감 28명 중 시·도경찰청장이 12명이나 있었는데 다음날 오전 9시자로 서둘러 발령낸 것을 두고도 말 못 할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행정안전부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권고안을 이상민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사실상 '실행'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부처 안에 인사 등 경찰 관련 업무를 담당할 지휘조직인 이른바 '경찰국'을 신설하고,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을 제정하는 등 경찰 통제 강화 방안 추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사진은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 연합뉴스

◆경찰 내부도 혼란…'입장 피력' 나선 경찰청장, "면담·조사 필요없다"는 행안장관

경찰 내부에선 정부의 경찰력 약화 시도를 규탄하는 쪽과, '지휘부 책임론'을 주장하는 쪽이 입장차를 나타내는 등 동요가 일고 있다.

일선 경찰과 야권에서는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의 경찰 통제 권고안과 인사 번복에 대한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행정안전부가 모두 이번 인사 번복 사태를 경찰 책임으로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경찰은 일단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만 전날 경찰청 측은 당일 대통령 결재가 나기 전 최종안을 공지한 데 대해 '(결재가 예정된 내용을 미리 알리는)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윤 대통령의 '경찰 책임론'에 대해 진위를 밝히는 TF를 구성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이상민 장관이 당일 5시쯤 귀국했고 6시께 1차 인사안이 경찰청에 내려왔고 2시간만에 번복됐는데, 윤 대통령께서 경찰청이 올린 안을 그대로 발표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경찰청이 올린 안과 다른 안으로 1차 안이 내려왔고 이후에 또 한 번 수정됐다. 1차로 내려온 안은 행안부와 분명히 얘기된 것"이라며 "오히려 2시간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경찰미래비전위원회 학술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창룡 경찰청장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경찰미래비전위원회 학술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이 나서서 경찰 책임을 언급한 만큼 김창룡 경찰청장의 거취도 불안정해졌다. 김 청장 임기는 다음 달 23일까지로 한달가량 남았다.

경찰 내부망에서도 일부 경찰이 "청장님의 용기 있는 퇴장을 바란다" 같은 글을 올리자 이에 대해 '김 청장이 지금 사퇴하면 오히려 지휘관 공백 상태가 돼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을 향한 정부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경찰청장이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행안부는 대화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날 김 청장은 "(행안부 자문위의 경찰 관련 권고안과 관련해) 장관께 충분히 우리 입장을 말씀드리고 건의드릴 것"이라며 "최대한 빨리 만남 일정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김 청장과 면담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면서, 인사 번복 논란에 대한 조사 필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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