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능소화의 계절이다. 나팔 모양의 진한 주황색 꽃이 곳곳에서 화려하게 만개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한여름에 피는 능소화만큼 크고 정열적인 꽃도 드물다.
박경리 작가는 대하소설 '토지'에서 능소화를 최참판댁의 상징으로 삼았다. 최참판댁 담벼락에 피어 있는 능소화는 상놈들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양반꽃'이었던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능소화는 여주인공 현금처럼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꽃'이다. 조두진 작가의 소설 '능소화'는 능소화 피던 날 만나 능소화 만발한 여름날 이별한 부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능소화는 400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사랑꽃'이었다.
대구경북에도 능소화 명소가 많다. 남평문씨 세거지인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의 인흥마을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대구 중구 대봉동에 있는 한 건물에도 능소화가 마치 폭포처럼 개화해 인기가 많다. 경주 교동 교촌마을의 기와집에 있는 능소화도 해마다 장관을 이룬다.
경산시 자인면 자인초교 근처에는 '능소화 적산가옥'이 있다. 담벼락 아래부터 지붕을 따라 가지를 뻗은 능소화 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펴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 누군가가 능소화 나무의 밑동을 잘라 이젠 꽃이 피지 않는다. 능소화 대신 앙상한 가지와 '목격자를 찾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능소화 꽃가루엔 독이 있어 실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무엇에 눈이 멀어서 밑동을 잘라냈을까? 능소화 나무와 관련해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주인과 대화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릇된 판단으로 하루아침에 이 동네의 관광 명물이 사라졌다. 주인뿐만 아니라 능소화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추억도 함께 없어졌다.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다. 능소화가 바람에 흔들리는 날이면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던 모습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인간은 공생의 길을 찾기보다 파멸의 길을 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후회한다. 끝나지 않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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