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고3인 딸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며 바꿔 달라고 합니다. 고3이 휴대폰 자주 볼 일이 있겠냐며 수능 칠 때까지만 그냥 쓰면 안 될까 했더니 "삼촌이 있었으면 최신형으로 바로 바꿔 줬을 텐데…"라며 말을 흐립니다. 항상 조카 편이 되어주던 삼촌은 제게 하나뿐이었던 오라버니, 저의 오빠입니다. 지금도 제 가슴 한 켠에는 늘 오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빠는 저에게 언제나 든든한 방패막이었고, 결혼 후 미국에서 지내는 언니에게도 매우 좋은 남동생이었습니다. 막내인 저는 미국에 있는 언니와 아직 미혼인 오빠를 대신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언제나 오빠의 존재는 제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2019년 2월 어느 날, 오빠가 할 말이 있다며 잠깐 만나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오빠는 아주 담담한 태도로 '병원에 갔더니 폐암 4기라고 하더라'라며 진단서와 약봉투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갑자기 암이라니, 그것도 4기라니!
한 달 후, 여전히 망설이는 오빠를 설득해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충격을 받으실까 염려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오빠는 여러 차례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였고, 나이 드신 부모님이 고생하실까 봐 일부러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입원을 했습니다. 오빠는 대구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였고 저는 퇴근하면 병원에 들러 오빠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위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8월 초부터는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오빠가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이미 종양이 뼈와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어 수술도 하지 못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아오면서 체중이 점점 빠지면서 혼자서 움직이기 힘들 만큼 기력이 떨어졌지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도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기 때문에 9월 초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도 오빠랑 저 둘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평소에는 남매끼리 마음을 다 표현하며 살지 못했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같이 보낸 어린 시절이 참 많이 생각났습니다.
남매끼리 맨날 싸운다며 주말 아침 아버지께서 셋이 앞산 중턱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약수물을 받아오라고 하셨던 일, 투덜거리며 집을 나섰지만 약수터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까르르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던 일, 부모님이 모임에 가셨을 땐 언니가 돈을 내고 내가 라면을 사오면 오빠가 맛있게 라면을 끓여주었던 일,
아빠가 아들인 오빠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이것저것 많이 가르치면서 제게는 그러시지 않으셔서 서운했던 일, 잘생긴 우리 오빠 보려고 중학교 시절 제 친구들이 매일 집에 놀러오고 싶어했던 일, 오빠가 그걸 알면 기고만장해질까 봐 오빠에겐 말 안 했던 일 등에 대해서 하나씩 추억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오빠가 우리 오빠라서 저는 항상 자랑스럽고 든든했다고 오빠에게 말했어요. 그러자 오빠는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기뻤을 때가 조카인 제 딸 도연이가 태어났을 때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당장 떠난다 하더라도 다른 못해본 일들은 다 포기할 수 있는데 도연이가 커가는 모습을 못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오빠는 눈물을 보였었죠.
오빠와 더 나누고 싶은 얘기는 제 가슴 속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많이 그립고, 언제나 보고 싶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오빠에 대한 추억을 함께 나누고, 그리운 마음을 서로 위로하면서 항상 오빠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자랑이었던 아들, 엄마에게는 믿음직한 아들, 언니에게는 착한 남동생, 조카에게는 항상 자기 편이 되어주는 미남 삼촌이었던 우리 오빠.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늘 웃으면서 편히 지내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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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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