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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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건 매버릭'이 개봉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첫 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범죄도시2' '브로커' '헤어질 결심' 같은 좋은 한국영화들을 제압하고 있는 건 좀 아쉽지만, 해외영화가 대한민국 수많은 기성세대들의 못 드러냈던 마음을 읽어 주는 것 같아 반갑다.

1986년 개봉한 '탑건'의 20대 대위 매버릭은 제멋대로인 혈기에 욕심을 부리다 동료를 잃는 사고를 치고 방황도 하지만, 끝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공을 세운다. 그래서 교관이 된 건데, 36년 후 개봉한 영화에서도 교관이다. 계급은 겨우 세 계급 상승한 대령. 전작의 동기생은 맨 꼭대기 4성 장군이 돼 이제 만나기도 힘들고, 후배 기수 3성 장군은 선배 대접도 안 해주고 사사건건 자꾸 뭐라 그런다.

이걸 두고는 스크린 밖 해석이 분분하다. 별을 달면 전투기를 몰 수 없으니 진급을 포기하고 대령으로 남아서, 1편에서 보여준 독불장군 기질(매버릭, Maverick은 좋게 말하면 독립성과 개성이 강한 사람을 뜻한다)을 버리지 못한 탓에 36년 동안 '찍혀서'. 그리고 매버릭을 포함한 모든 조종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릴만한 이유도 추측된다. 극중에서도 언급되는 무인 전투기 도입 가능성이다.

매버릭 정도면 별 달고도 조종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을텐데, 그쯤했으면 멈춰 넘겨주고 떠나라고 하는 게 세상이다. 한번 찍히면 무서울 정도로 소외시키고 낙오시키는 것도 세상이다. 그리고 키오스크(무인 주문기)며 로봇 같은 게 있으니 너흰 이제 쓸모 없다며 사형 선고도 내리기 시작한 게 바로 요즘 세상이다.

지금 기성세대들이 처한 상황도 저들 중 하나 내지는 그 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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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 매버릭'의 촬영 현장 모습. 네이버 영화

그러나 환갑을 곧 앞둔 매버릭은 모두 부정한다. 퇴물인 줄 알았는데 선물처럼 등장해 보물 같은 활약을 펼치면서, 딸·아들뻘 부하들 단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고 끌고 온 교관 매버릭은 "더는 파일럿이 필요없는 시대가 온다"는 말에 "그럴지도, 하지만 오늘은 아냐(Maybe so, but not today)"라고 말한다.

저 말은 할리우드의 기성세대, 즉 '고인물'인 톰 크루즈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직접 입증하기도 했다. 다른 영화의 후배 배우들은 CG(컴퓨터그래픽) 배경에서 모션캡쳐로 하늘을 날지만, 톰 크루즈는 직접 전투기에 탑승해 항공모함에 이·착륙한 것을 비롯해 항공 액션 장면 전부 대역 없이 소화했다. 아울러 그를 포함해 조종사로 출연한 배우들 모두 수개월 간 현역 조종사들과 함께 항공 훈련을 받았다.

쉬운 길, 편한 길 없다는 얘기다. 고집이 결국 맞다는 얘기다. 이게 지금 세계적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미 톰 크루즈의 생애 첫 수익 10억 달러 돌파 영화 기록도 작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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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1편만 존재했기에 강렬하지만 좀 아슬아슬하기도 한 청춘의 인상이 짙은 캐릭터였던 매버릭은 이번 2편을 통해 진짜 어른이 뭔지 보여준다. 함께 나이를 먹은 기성세대들은 청춘이 그저 흘러가 사라진 게 아니라 나와 내 주변과 종사하는 분야에 든든한 토대가 됐다고 인정해주는 것 같아 왠지 모를 가슴 푸근함에 조금이나마 용기도 얻으며 극장을 나서게 되는듯 하다. '탑건 학교 36년 잘 이어져왔네. 실은 내 삶도 되돌아보니 그런 것 같아.'

톰 크루즈는 단 한 번도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매버릭을 연기한 그를 보고 나니,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다. 관객들 저마다 마음에 상이며 훈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말이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 사는 세상도 그런 시상자와 시상식으로 풍성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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