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태어나 줘서 고마워”

모현철 논설위원
모현철 논설위원

조선시대 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대표작은 '곡자'(哭子)다. 곡자는 '자식을 잃고 운다'는 뜻이다. 이 시는 "지난해는 귀여운 딸을 잃었는데/ 올해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앞세웠구나"로 시작해 "애끊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로 끝난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절절히 느껴진다. 허난설헌처럼 대부분의 어머니는 자녀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 사건이 끊이지 않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 달 넘게 실종됐다가 전남 완도 앞바다에 빠진 승용차에서 가족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 양을 두고 안타까움이 크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있으며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힐 방침이다. 일가족 실종 소식이 전해진 뒤 많은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염원했으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부모가 양육 능력 상실 등을 이유로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사례는 숙지지 않고 있다. 부모에 의한 '비속 살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고 부모의 선택을 일방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강요로 극단적 선택을 당한 아이들은 명백한 범죄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어떤 양형 이유'의 저자인 박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2020년 부모가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 1심 판결의 양형 이유에서 "가정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비극은 언제든 재발할 우려가 있다. 아동 보호를 위한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해 화제가 됐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로커'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생명의 소중함이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라는 미혼모 소영(이지은)의 대사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노력할 때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국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아동의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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