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 속 세상은 늘 우아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내 눈에 도무지 현실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도, 거기에 등장하는 시민도, 그 뒤로 고개를 숙인 범죄자도, 심지어 그걸 촬영하는 카메라맨까지도 우아해 보였으니 말이다. 하물며 그 눈에 비친 드라마나 광고 혹은 만화영화 속 세상이야 오죽했을까. 좀처럼 입을 잘 다물지 못하는 내 버릇도 아마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특히 '주말의 명화' 같은, 미국이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외화'들은 그런 우아함의 정점처럼 비치기도 했다. 더없이 여유로운 그들의 표정이며, 대사며, 행동이며, 또 살림살이는 어떠한가. 햇살이 비치는 식탁에서 환한 미소로 대화를 이어가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란. 그때마다 창밖에 일렁이는 푸른 나무들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런 풍경들 앞에서 나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브라운관 앞에 앉아 자연스레 무릎을 끌어모으곤 했다.
TV를 끄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여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꺼진 브라운관 앞에서도 나는 좀처럼 끌어안은 무릎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컴컴한 유리에 비친 또 다른 풍경 때문이었다. 그 속에는 방금까지 우아하고 화사했던 TV 속 풍경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꺼진 브라운관 위로 비친 그것은 당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조그만 셋방의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햇살이 비치는 식탁이나, 환한 미소나 대화,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식사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군데군데 그을린 장판이 깔려 있었고, 비좁은 살림 속에서 말없이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창밖에는 푸른 나무들 대신 담벼락에 낀 이끼들만 짙게 펼쳐져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동경했던 '외화' 속 풍경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잿빛의 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는 모든 게 시무룩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따금 아쉬운 마음에 열기가 남은 브라운관을 천천히 더듬어 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손끝에서 기분 나쁘게 지지직거리는 전파가 일었다. 무언가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동경의 눈빛으로 들여다본들 저 우아하고 화사한 세계로 건너갈 방도가 도저히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세계는 TV 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후로도 나는 그처럼 건너갈 수 없는 세계를 자주 동경했고, 그때마다 컴컴한 유리 앞에 웅크려 앉은 아이가 되곤 했다. 몸이 커지고 나이가 들어도 나는 여전히 그 앞에서 끌어안은 무릎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비친 잿빛의 풍경 속에는 언제나 시무룩하게 변한 내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얼굴이야말로 내가 동경하던 '외화' 속 풍경에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얼굴이었는데, 그게 결국 내가 저 우아한 세계로부터 차단당한 이유였음을 알기까지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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