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은 반월당네거리는 명실상부한 대구 중심부다. 도시철도 2호선은 물론 대구 교통의 핵심인 달구벌대로와도 가까워 문화‧의료시설 접근성이 높다.
반월당역 21~23번 출구 인근 고층 빌딩들 사이로 들어가면 20여곳의 단독주택들이 나온다. 이 주택들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지난 2020년 대구시가 이 일대 파악한 빈집은 5곳이지만, 현장에서 문을 두드리고 주민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12곳이 빈집으로 파악됐다.
골목 내에서 주민들은 물론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성히 자란 잡초와 풀들만이 동네를 지키고 있었다. 깊숙이 들어간 골목에서 마주한 빈집들은 사정이 더 좋지 않았다. 대문을 뚫고 나온 이파리와 담장에 쳐진 덩굴은 방치된 세월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대구 도심 속 기와집에 멈춰버린 도시
개 짖는 소리가 나는 집의 대문을 두드리다 71년 한평생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문환(가명) 씨가 창문을 열었다. 그가 들려준 이 동네 사연은 '기와집에서 발전이 멈춘 동네'였다.
과거 이 마을은 대구에서 알아주는 부촌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주변 동네가 초가집이었다면 여기는 나홀로 기와집으로 단장했다. 자연스레 유입 인구도 늘어 한 집에는 가구원 4~5명씩 모여 살았다.
하지만 발전은 기와집에 그쳤다. 박 씨는 이 동네가 빈집촌으로 남겨진 주된 원인이 노후된 주택이라고 봤다. 고령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집이 남겨졌지만,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들에 다음 세대의 자식들이 들어올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박 씨는 "40~50년 전에는 한 집에 바글바글하게 모여 살았다"며 "요즘에는 공짜로 거주하라고 해도 좋아할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빈집들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대형 건설사들이 몇 차례 재개발 의지를 보였으나 좁은 부지에 비싼 땅값이 문제였다. 집주인들과 협상에 매번 난항을 겪으면서 무산되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이 동네는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그늘진 채 허물어져만 가고 있다. 이곳에서 외부를 바라보면 불과 10m 앞에 고층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다. 162가구 규모인 이 오피스텔은 단 하나의 공실도 없이 분양됐고 현재는 세입자들로 꽉 찬 상태다. 집주인들마저도 낡은 집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시간 흐를수록 외연 확대하는 빈집
지난 2020년 이뤄진 실태조사로 나타난 대구 전체 빈집은 모두 3천546곳이다. 단순 숫자만 놓고 보면 동구가 698곳으로 가장 많았으나 면적 대비 빈집 수를 비교하면 중구(26.06호/㎢)에 가장 많은 빈집이 밀집돼 있었다.
다음으로 서구(25.62호/㎢)와 남구(22.03호/㎢)가 뒤를 이었다. 이들 3개 구는 평균치인 4.01호/㎢를 크게 웃돌았다. 좁은 면적에 빈집들이 촘촘하게 몰려 있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택 대비 빈집 비율도 중구가 0.58%로 가장 높았고 서구 0.54%, 남구 0.52%가 평균치(0.35%)를 웃돌았다.

중·남구와 서구의 빈집 밀집도는 대구 전체 빈집 분포를 지도상의 좌표로 표시해 시각화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BIZGIS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대구 빈집 밀집도(그림1)를 보면 대구의 빈집은 중심상업지구인 반월당역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모습이다. 과거 대구의 중심 시가지인 중·남구와 서구에 그만큼 노후화된 빈집이 많다는 점을 의미한다. 동구, 북구, 수성구도 시내와 가까운 곳 위주로 붉은색이 뚜렷하다.
빈집 분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경향도 보였다. 대구의 빈집은 2014년 2천510곳에서 2020년 3천546곳으로 늘었다. 단순히 숫자만 증가한 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변화된 양상을 보인다.

경북대 지리학과 전병운 교수가 빈집의 공간 분포를 시각화한 자료(그림2)를 보면 초록색으로 나타난 2014년 빈집은 비교적 좁은 범위의 도심 속에 자리잡고 있다가 2020년(갈색)에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빈집의 분포가 넓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다만 2014년 조사에서 중구에 유독 빈집이 많았던 건 활발한 주택정비사업의 영향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중구를 중심으로 재개발 재건축에 따른 신규 아파트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빈집과 정비사업과의 상관관계는 이어질 기사에서 또다시 다룰 예정이다.
전병운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는 "대구 도심에서 빈집이 발생하는 원인은 노후된 주택과 주거인구의 고령화뿐만 아니라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연 또는 구역 해제와 같은 정책적 요인과도 맞물려 있다"며 "장기적 또는 의도적으로 방치되는 빈집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빈집세를 부과하는 등 시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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