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호모 일렉터스(electors), 선거하는 사람들

인류진화과정 형상화.
인류진화과정 형상화.
임상준 경북부 차장
임상준 경북부 차장

'카톡' '띵동' 쉼 없이 울어 대던 휴대전화 알림음이 잦아드니 좀 살 것 같다. 세상 편하다. 선거 유세차의 확성기 소리도 멈췄다.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선거 기간은 후보자 면면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지만 '선거 공해'란 불평도 많다. 특히나 대구경북은 '빨간색' 일색이니, '그 나물에 그 밥'이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또 왔다'는 탄식이 되풀이되는 터라 선거 짜증이 일고도 남는다.

선거에서 승리한 선출직들의 임기가 지난 1일 일제히 시작됐다. 앞으로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4년의 임기는 보장된다. '치세'(治世)에 온 열정을 쏟아야겠지만 먼저 풀어내야 할 숙제가 있다. 선거 과정에서 생긴 고소·고발전과 논공행상은 넘고 가야 할 산이다. 이 과정에서 뒤탈도 만만찮게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선거 행위'에 포함되며 선거 후유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냥 슬기롭게 풀어내면 될 일이다. 당장 '조조'의 분소밀신(焚燒密信) 사례에서 지혜를 구해 보자.

조조는 전세가 불리했으나 전투에서 경쟁자인 원소의 대군을 격파한다. 이후 패주한 원소의 진영에서 부하들이 내통한 편지 다발을 발견하지만 그대로 불태워 버린다. 조조의 인사 철학을 보여 주는 단적인 일화다. 선거를 도왔든, 반대편에 섰든, 선거에서 있은 대립과 반목은 한데 모아 불사르면 어떨까?

아직 모자람이 있거들랑 '절영지연'(絶纓之宴·갓끈을 끊고 즐기는 연회)의 고사를 되짚어 보자. 왕이 베푸는 주연에서 촛불이 꺼진 틈을 타 한 신하가 왕의 애첩을 더듬은 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애첩이 놀란 나머지 그 신하의 갓끈을 움켜잡고 뜯어냈다. 다시 불을 켜면 갓끈 없는 신하가 범인으로 드러날 터. 왕은 오히려 모든 신하의 갓끈을 끊게 했고 범인을 밝히지 않았다.

선거 공신(?)에게도 당부 드린다. 원래 '사랑'과 '정치'는 '짝사랑'이 정답이다. 그래야 상처나 증오가 없는 법이라고 한 노정치인은 말한다. 선거 돕기를 감투나 자리를 바라지 말고 나서야 한다는 지혜로 들린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고 보면 하나같이 '내가 만들었다'며 '아전인수'를 풀어 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선거를 잘 도와서 당선된 게 아니다. 선거에서 될 사람은 그냥 놔둬도 된다. 특히 특정 정당 일색인 TK 정치판에서는 더 그렇다. '개나 말'의 도움밖에 주지 않았다.

이럴 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인 '미카와 무사'를 소환해 봄 직하다. 미카와 무사들은 주군(도쿠가와 이에야스)을 위해 목숨 걸고 전쟁에 임했다. 전쟁에 승리하고서는 전공(戰功)의 대가를 원하지 않았다. 묵묵히 고향으로 돌아가 '감투'와 자리 대신 쟁기와 호미를 들었다. 이들은 훗날 에도막부 300년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사피엔스'에서 인간은 '사고'하는 힘보다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술(?) 덕에 '만물의 영장'이 됐다고 주장한다. 조직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야말로 모든 종을 지배하게 된 원동력이라는 해석을 내렸다.

선출직은 유권자로부터 조직하고 협력하는 '면허'를 받은 자리다.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는 통합의 리더십으로 서민 행복을 이뤄 보면 어떨까. 혹시 아나? 인간은 선거에 의해 '종의 번영'을 이룬다는 논리의 '호모 일렉터스(electors)'란 책이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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