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2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어둠으로 새벽을 열듯' - 김봉순

김봉순
김봉순

1.

창문에 코를 부비며 사슴들이 혓바닥으로 핥고 지나가도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모차르트를 포기하고 베토벤을 베고 누워 협주곡 로망스에 빠져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론도 저 멀리, 플루트, 오보에, 바순, 호른이 번갈아 이명으로 맴돌다 블랙홀 속으로 빨려드나 보다. 한낮인데도 캄캄한 나락으로 끝 간 데 없이 떨어진다. 복통이 요동치며 서서히 밀려오다 지나가고 산모의 진통처럼 점점 그 강도가 세어지나 싶었는데 급기야 정점에 이르러 혼절하고야 만다. 결국 911,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서 안정제를 맞고서야 한참 만에 눈을 뜬다. 간호사를 부른다.

"여기가 어디에요?"

" 하이랜드(Highland) 병원 응급실"

"누가 날 데려왔어요?"

"저기 아들이"

중학생 아들이 걱정스런 눈망울로 다가와 두 손을 꼭 잡고 보호자처럼 도닥인다.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엄마가 쓰러져 있어 911에 연락했어요. 방금 아빠한테도 전화했어요. 금방 오신다니까 푹 쉬세요. 옆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부르고요."

'덩그마니 큰집이라서 그 기에 눌려서 그런 거야. 덩치가 조그마한 동양 여자가 2.8에이커나 되는 수목원에 내버려졌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몰라. 차를 타고 옆집을 가야한다니까. 큰 성채 같아. 거실이 앞뒤로 두 개, 식당이 두 개, 커다란 부엌, 파티를 열 수 있는 커다란 홀에 당구대가 하나, 탁구대도 있고. 안방은 또! 서울 살던 아파트만 해. 드레스 룸은 얼마나 큰지. 방도 4갠가 5갠가? 테니스장까지 있다니까. 야생사슴이 어슬렁거려. 숲 속에 집이 한 채 있으니 나무를 관리하는 데만 1년에 몇 천불을 쓴다나? 남들이 볼 때는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내겐 창살 없는 감옥살이가 따로 없다니까. 그러니 겁이 나서 대낮이라도 어떻게 혼자 있겠어? 도서관, 맥도날드가 피난처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북방 35마일에 있는 베녹번(Bannockburn)은 스포츠스타, 유명 연예인들도 살지만 대부분 유대인 부자들과 넓은 대지를 선호하는 부유한 은퇴자들이 사는 마을이다. 아니 마을이라기보다 숲이다. 집마다 작은 동산을 하나 가지고 있는 셈이니까. 회사는 왜 하필 이곳에다 투자를 했을까? 아무리 지점장으로 사택관리에 책임이 있다 해도 서울에서 살던 생활방식과 달라도 너무 달라 적응이 쉽지 않다.

하루 내내 검사실에 불려 다니며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기계 위에 눕고 앉고 서기를 반복한다. 반응 없는 허수아비처럼 그들 명령에 순응한다. 이틀 째 되는 날 드디어 의사 면담이 이루어졌다.

독일계 의사는 덩치가 집채만 하다. 키도 크고 몸집이 떡 벌어진데다가 순백 머리칼에 눈썹까지 하얀 사람이 새파란 눈동자에 하얀 가운을 걸치고 어깨를 뒤로 젖힌 채 안경을 들놓아가며 검사결과를 설명하는데 위압감을 느낀다. 그가 아무리 천사처럼 친절하게 목소리마저 나직나직하게 설명해도 나에겐 하데스에게 끌고 가는 지옥의 사자가 변모한 것이라 느껴진다.

"당신 뱃속에 커다란 혹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몇 개월 못 견딜 거예요."

그 자세도 부담스럽지만 그런 사형선고 같은 말을 무미하게 내뱉는 의사의 건조한 입술이 영 거슬린다.

"그게 뭔데요?"

"아직 몰라요. 더 상세한 검사 결과는 며칠 후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나온 혈액검사, X-ray, 그리고 초음파검사 결과가 그렇게 보이네요."

"아니 100% 확실한 것도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겁을 줘요?"

"그래도 환자에게 지금까지의 검사 결과를 알리는 게 의무라 생각해서요. 앞으로 몇 가지 상세한 검사결과를 해보면 정확한 진단이 나오겠지요."

오후 늦게 남편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의사를 만나 왜 어엿한 보호자가 있는데 그런 무서운 말을 환자에게 아무런 사전 통고도 없이 갑자기 했느냐고 따진다. 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환자가 성인인데 본인에게 직접 얘기해야지 왜 당신이 나서느냐고 역정이다. 당신은 남편일 뿐 환자가 아니기에 당연하단다. 우린 동양과 서양의 인식 차이를 몰랐던 거다.

그 태도가 거슬리고 마구잡이 같아 의사에겐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시내 대형 종합병원인 노스웨스턴(Northwestern)으로 옮겨버렸다. 보다 더 큰 병원에서 폭 넓은 진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이다. 새로운 검사에 또 검사. 혈액검사부터 CT. MRI. PET… 일본인 피가 섞인 미국인 의사가 주치의란다. 미소를 얼굴에 성형한 것 같은 인상에 훤칠한 키의 호남 형 의사다.

"아무 이상 없어요."

"그런대 왜 아파요?" 

"글쎄요."

퇴원한다. 퇴원을 하고 한 달 정도 지나면 또 아프다. 검사를 한다. 이상 없어요. 그런데 왜 아파요? 몰라요. 퇴원한다. 또 한 달 정도 지나면 아프다. 또 입원, 검사. 퇴원……. 현대의학이 무식한 건지 내가 예민한 건지 숨바꼭질하는 통증을 찾아, 그 병리를 찾아서 1년이란 세월이 다 가도록 손에 잡은 건 허울이고 바람뿐이다. 장난치나? 최고 현대 의학으로 찾지 못하는 건 분명 하느님이 술래잡기하며 약을 올리는 것일 게다.

이런 자신이 너무 싫다. 원인 모를 통증으로 발이 꽁꽁 묶이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귀신 나올 것 같은 큰 집에 유배되어 있는 무기력한 자신도 싫다. 160cm도 안 되는 조그만 여자가 집의 귀신에 눌려 그렇다고 확신한다. 이 집을 나가 서울 조그만 아파트나 주택에 살면 모든 증상이 사라질 것만 같다. 여기엔 아무도 모르는 무슨 마귀가 들앉아 조종해서 통증을 유발하고 잠을 자도 항상 붕 떠있으며 잠을 깨면 여기가 어디지? 하는 내 집이 아닌 어느 길섶에 버려진 방랑자 같은 느낌만 든다. 그러나 난 모태 기독교 신자이고 주말이면 성당 가는 것을 의무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여섯 번째 입원할 때 의사가 조심스레 제안한다.

"우리 실험적 수술 한번 해봐요. 검사 자체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자꾸 아프다고 하시니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 정확하니까요."

실험적 수술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그게 뭐지? 하고 잠시 의문을 품었을 뿐 결정에 망설임이 없다.

"저도 지쳤어요.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자꾸만 아프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빨리 해요."

1년 넘게 병원을 들락대는 사이에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서울을 떠나 이곳을 올 때만 해도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꿈들은 다 물거품이 되고 온종일 신경이 배의 통증에 가있으니 아무 것도 할 수도 없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난 통증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 같다. 평소에 가졌던 욕심만큼 온통 육체의 고통으로 지내는 자신이 너무 싫다.

난생 처음으로 수술대에 오른다. 아픈 것을 떼어내거나 붙이는 것도 아닌 뱃속을 들어다보려는 수술은 약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외과를 담당하는 주치의에 마취를 담당하는 의사, 판독을 담당하는 의사까지 우르르 모여 환자 하나를 로젯 실험대에 올려놓고 무영등 아래에서 요리조리 둘러보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쥐를 해부하고 호기심에 들떠 뒤적거리는 학생들 같이 북적거린다.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돌아와 두세 시간 정도 지날 즈음 그 미소 의사가 고조된 억양으로 장황하게 설명한다.

"어디에도 이상이 전혀 없고 깨끗해요. 배에 구멍을 뚫은 김에 로봇으로 맹장만 잘랐어요. 우리가 실행한 검사와 눈으로 확인한 장기들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아플까요?"

"의학적으로는 아플 이유가 없어요."

"그럼 제가 꾀병을 하는 거네요. 뭐가 좋아 배에 구멍을 내면서까지 꾀병을 하냐고요?"

바람의 도시답게 미시간 호수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키만큼 눈이 오는 겨울보다 더 혹독한 나날이 나를 괴롭힌다. 2년 전 서울서 시카고로 올 때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멀쩡하던 몸뚱이가 이젠 겁이 나서 아무 데도 마음 놓고 외출할 수가 없으니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다. 집의 기운에 눌렸다니까. 매일매일 그렇게나 하지 않던 기도를 한다. 성당에 가서 기도 시간이 되면 의무적으로 눈을 감고 미사를 드렸지만 집에서 두 손 모아서 별도 기도를 한 것이 언제쯤인가? 그것도 남을 위한 기도나 중보 기도가 아닌 자신을 위하고 제 몸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은 그만큼 아프기 때문이지만 어색하기도 했다. 그 기도에 응답한 걸까?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드디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을 탈출하게 된다.

남편이 런던으로 전보되었다는 전화다.

2.

런던 외곽 남서쪽 윔블던을 지나 넓은 단독 저택들이 모여 있는 킹스턴 마을, 기차역 가까운 곳에 회사가 업무용부동산으로 구입한 빅토리아 스타일 2층집을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1층은 널찍한 거실에 부엌, 식당과 손님방이 하나 있다. 또 별도로 정원 일부를 유리로 뒤덮은 커다란 테라스 룸이 탁 트여져있다. 2층에는 중간크기 방 2개와 커다란 안방이 있는데 욕실과 옷장이 딸린 방으로 침대에서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이 집의 백미는 150평이 넘는 정원이다. 바비큐장이 왼쪽에, 나무식탁은 오른 편에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정원 좌우 둘레를 1~2미터 넓이로 허리 높이만큼 돋워 연중 내내 무슨 꽃이든 항시 피어나게끔 여러 종류의 꽃들을 심어놓아 언제나 풍성하다. 장미에서부터 히스, 수선화, 튤립, 데이지와 이름 없는 들꽃, 풀꽃까지 어우러져 피게 하는 자연미에 중점을 둔 조경이다. 정원 담장은 편백나무와 사철나무를 빼곡하게 심어 외부에서 엿볼 수 없게 하였고 오른편엔 거대한 버드나무가 80년 위용을 자랑하듯 우뚝하니 서있다. 그늘을 만들어 주고 황조를 비롯해 찌르라기, 박새, 까치, 굴뚝새를 불러와 바람의 향방을 가늠하게끔 항시 흔들거린다. 바닥은 캔터키블루 그라스를 깔아 사철 늘 초록이다.

마당 건너 앞집 경계선 바로 안쪽으로는 길이 25m, 폭이 4~5m정도 되는 작은 수영장이 있다. 여름 한철을 위한 수영장 관리는 까다롭다. 쓰지 않는 동안엔 바닥이 갈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물을 어느 정도 채워둬야 한다. 또 쉬 더러워지기 때문에 물빛 커다란 덮개로 덮어 둔다. 1년에 한두 달을 제외하고는 덮개 덮은 수영장인데 거실에서 보면 물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그 뒤로 일광욕을 위한 플라스틱 접이의자나 파라솔 같을 걸 넣어두는 자그마한 창고가 있다. 창고와 거의 들붙어있는 곳에 그리 높지 않는 나무철책 담장이 앞집과의 경계선이다. 편백나무와 크리스마스나무, 가시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가장 으슥한 곳이기도 하다. 누구도 담장 앞으로는 잘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어쩌다 수영이라도 할 때는 창고 앞에서 서성이다 집으로 들어오지 담 옆에 뭐가 있는지는 관심조차 없다. 정원사들도 담장 앞의 풀을 깎고 나무의 높이를 조정할 뿐 담쟁이를 뜯어내고 그 속을 뒤엎지는 않는다.

대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는 담장 아래에 나뭇가지와 잡풀로 은신처를 가리고 그 밑에 흙을 파서 굴을 만들어 작은 여우가 살고 있다. 태어 난지 불과 몇 달이나 되었을까? 고양이만 하다.

이렇게 아늑하고 포근하며 산책하기 딱 좋은 넓이의 정원을 가지고 있는 런던 사택으로 온지 1주일 지날 무렵, 정원을 거닐며 난생 처음 보는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너무 예쁘고 신기하여 찬찬히 살핀다. 바로 그때 잘못 들었나? 어디선가 킁킁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 그 소리를 따라 수영장 끝까지 가만가만 다가가 본다. 어디 쥐라도 있나? 조심스레 담장 곁을 찬찬히 살피는데 놀랍게도 아주 조그마한 여우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앞다리로 열심히 땅을 파다가 코를 집어넣고 킁킁거리고 있다. 여우라는 선입견 때문에 흠칫 놀라 뒷걸음을 쳤으나 아주 조그만 거라 무섭다기보다 귀엽게 보였다. 그라데이션 밍크 같은 은빛 털에 붉은 두 눈이 앙증맞고 움직이는 모습이 귀여워 살그니 한 발자국 다가서자 재빠르게 컴컴한 담장 사이로 사라져 버린다. 여우도 예상치 못하다가 놀랐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음 날, 그 다음날도 담장 근처에서 혹시 나타나지 않나 하고 기다렸지만 허탕이다. 곰곰이 생각하니 어린 것이 배가 고파 헉헉대지 않았던가. 부엌으로 급히 가 여우가 좋아한다는 닭고기를 다져 중간 사이즈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담장 아래 놓아두고 기다렸다. 그래도 소식이 없어 되돌아와 좀 쉬다가 다시 가보니 언제 치웠는지 말끔히 비워졌다. 다시 또 한다. 끼니때마다 각종 고기나 딸기 종류, 우유 같은 것을 놓아두면 사라진다. 그러기를 한 달 정도 하고 난 뒤, 하루는 먹이통을 놓고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 여우가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살피더니 먹이를 핥아먹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개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살그머니 다가서도 이젠 피하지도 않고 그냥 못 본 채 먹는다.

그날부터 점점, 그러나 갑자기 여우와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처럼 표정과 소리로 대화를 한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담장 밑에서가 아니라 마당까지 따라 나와 같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어렵사리 바깥으로 나온 어린 여우가 정상이 아니다. 왼쪽 뒷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린다. 정원을 걷는데도 뒤뚱거리며 느릿하니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날이 지날수록 은빛 여우의 맥박소리는 점점 높아져 간다. 여우와 가까워지자 차가운 안개마저 시나브로 따스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가벼운 뜀박질도 하고 장난도 걸어본다. 강아지 놀이처럼 원반을 던지면 힘껏 달려가 물고 오기도 하고 내가 뛰면 여우도 함께 뛰고 천천히 걷다가 멈추면 여우도 멈춘다. 여우는 내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는 연주자다. 뒤뚱거리며 걷는 여우만큼이나 내 걸음도 통증 무게에 짓눌려 뒤뚱거리기는 마찬가지다. 한참을 뱅뱅 돌다보면 누가 절름발이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둘이 다 정상이 아니다. 그만큼 가까워지고 소리 없는 숨소리만 정원을 메우는 시간들을 만끽하고 있다. 정상이 아닌 그 무엇도 우리에게는 정상이고 그들을 보는 눈들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픔은 본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다가선 것뿐인데도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세상이다. 외형이나 내장이나 마음까지도 선택보다 우연히 닥친 불행이라고 봐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동질감에서 말을 건넬 순 없지만 하루하루를 기다릴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작은 여우가 마을로 들어와 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해서 다리를 다쳤는지 모른다. 그냥 집으로 들어와 살려는 어린 것을 쉬 불쌍한 마음으로 거두어주고 싶을 뿐이다. 아마 어미는 사람들에게 들켜서 봉변을 당했으리라. 이 자그마한 여우도 사람들에게 여우라는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 당하고 무조건 공격을 당했으리라. 런던 외곽 M25 원형 고속도로 서남쪽으로 폭스 힐(Fox hill)이란 지역이 있다. 조금 더 나가면 황무지가 드문드문 널려있는데 그곳이 여우들이 사는 주 무대다. 그들이 어떤 경로로 매트로 런던으로, 리치몬드 공원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으려다 차에 치여 죽거나 사냥총, 돌팔매에 죽기도 하고 봉변을 당하기도 했으리라. 잃어가면서도 끊이지 않게 먹이 찾는 행렬이 그들 세상에 살아가는 하나 방법인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로니에 꽃잎이 하얗게 흩날린 날들이 지나고 햇살 뜨거운 여름마저 기우려질 때까지 비밀정원에서 여우와 함께 춤을 추는 은밀한 파티가 매일 이어진다. 웃음소리, 숨소리도 점점 커져간다. 여우도 나도 메말라버린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걷고 뛰며 헉헉거린다. 흠뻑 취해버린 시간마저 체감온도에 따라 올라가다 정점을 지나면 떨어지는가. 느닷없이 매지구름이 하늘을 덮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우려하던 대로 보랏빛 히스가 만발한 가을 입구에서 갑자기 통증이 밀물처럼 다가섰다. 참을 만큼 견디다가 주치의 닥터 불룸(DR. Mr Bloom)을 만난다. 벌써 세 번째다. 내가 런던 사택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에 킹스턴 종합병원이 있다는 거다. 아프면 진통제 한 알 먹고 조금 쉬었다가 걸어가면 되니 누구를 귀찮게 할 필요가 없다. 매번 같은 CT나 초음파, 혈액검사를 반복하고 반나절 쯤 지난 후에야 의사와 면담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웨일즈 출신 의사는 작달막한 키에 약간 붉은 얼굴빛이 나는 통통한 체구로 갈색 머리, 푸른 눈의 미남형이다. 차트를 꼼꼼히 살피더니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미국에서 한번 하셨지만 다시 실험적 수술을 하면 좋겠어요. 이번엔 대장 부위를 절개해보고 싶어요. 꼭 뭔가 있을 것 같아요. 원인 없이 아플 수는 없으니까요."

가슴이 쿵!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병원을 들락거리는 것도 이젠 지겹다. 무엇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스스로는 건강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남편 없인 시장도 못 가고 어디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대영박물관도 가보고 싶고, 윈저에서 따듯한 울 스웨터도 사고 싶고, 리젠트에서 웨지우드도 사고 싶고, A3 도로변의 아담한 찻집에 들려 따끈한 잉글리시 밀크 티도 마시고 싶다. 아직 시내 구경을 한 번도 못 한 신세가 처량하고 죽든 살든 이렇게 사는 게 불안하기만 하다.

"OK! 당장 하지요."

입원을 하고 남편에게 전화한다.

"아니? 상의 한마디 없이……. 어디 아픈 곳을 찾아낸 것도 아닌데 꼭 그렇게 수술을 받아야 해? 괜히 또 의사들 시험대상이 되는 거 아냐? 누구한테 물어봐라. 세상 누가 어디 아픈 곳을 못 찾아서 두 번씩이나 수술한 사람이 있는지. 물론 결정은 당신이 하겠지만 영 찜찜해. 나라마다 뭐 하나씩 떼어주는 것 같아서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의사란 직업은 배를 열면 꼭 그냥 지나가지 않고 뭔가 하나를 떼어내거나 붙이거나 한다. 어쩌면 직업 근성 같은 것이 있다.

그 다음 날, 2시간이면 충분하다던 수술이 10시간이 더 걸려서야 끝났다. 피투성이를 한 채 중환자실로 갔다가 몇 시간 후에 회복실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새벽녘에 8층 호텔 병실로 돌아왔다. 의료비 전체를 국가가 부담하는 영국에서 특별히 개인보험으로 병원비를 내는 환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병실을 호텔이라 부른다. 남편과 아들은 자기들이 더 아픈 표정으로 한숨도 못 자고 부스스한 눈이 우멍하게 들어가 있다. 오전 9시가 넘어 의사가 들어와 침대 가까이 다가오자 바짝 신경이 곤두서고 다문 입술이 바싹 마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그냥 닫으려 했어요. 막 장기를 정리하는데 대장 뒤편이 좀 이상해서 뒤집어 봤지요. 대장 뒷부분에 가로 1cm정도 넓이로 잘 안 보이는 조직세포가 일직선을 그으며 괴사되어 번져가고 있었어요. 그러니 대장이 활동을 못하고 음식물이 들어오면 점점 커지기만 할뿐 가스로 가득 찬 증세를 보이는 거지요. 가스 때문에 아팠어요. 이런 병세는 아주 희귀해요. 아직 의학계에선 정확한 병명도 없어요. 상태로만 보면 메가 콜론(Mega colon)이지요. 천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소장과 직장 연결 부문 몇 센티가 아직 건강하다는 거요. 그래서 대장만 거의 1m 이상을 잘랐어요. 대수술이지요. 똥주머니를 안 차게 되서 불행 중 다행이지요. 하늘이 도우신 거예요. 무서운 병이니 재발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해요."

의사는 안경을 들썩거리고 차트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꼼꼼하고 친절하게 주의사항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불행 중 다행이나 몸의 일부분을 떼어내고 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애기에 오싹 온몸이 저려온다. 시카고에서는 집의 귀신이 붙어서 그렇다고 믿었는데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세포가 죽어가는 병이라고? 그렇게 잃고 버리면서 버팅기고 산 날들이 꿈만 같다.

3.

수술 후 2주가 지나서야 퇴원한다. 남편과 아들이 아기 돌보듯 감싸고 부축하여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차로 태워 집에 온다.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린 여우를 찾아 나선다.

"아가야, 아가야, 어디 있니? 내가 왔다. 얼굴 좀 보여줄래?"

담쟁이덩굴로 가려진 작은 토굴 앞에서 몇 번이나 어린 여우를 불렀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생닭고기 잘게 다진 것과 잘 익은 딸기를 반으로 썰어 플라스틱 쟁반에, 신선한 우유를 오목한 용기에 담아놓았다. 어린 여우가 목을 빼고 자기를 기다릴 것만 같아 퇴원하여 부랴부랴 먹이를 준비하고 절뚝거리며 왔는데 어딜 간 걸까? 다른 곳에 숨었나 하고 두리번두리번 찾아봐도 없다. 쿵! 가슴 한 구석에 도사리던 불길한 예감으로 털썩 주저앉는다.

푸석한 머리칼에 핏기가신 핼쑥한 얼굴, 건들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이 뼈만 앙상하니 작달막한 체구가 안쓰러워 남편은 극구 정원으로 나가는 걸 말렸다. 인생 절정기로 휘젓고 다녀야할 나이인데 남들은 평생 한 번도 안한다는 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다. 경과가 좋다고는 하지만 3주 가깝게 입원해 있다가 방금 전에 퇴원했고 이제 어렵사리 집에 와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지경이니 말이다. 서울을 떠난 지 5년이 채 안 된 지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무슨 여우타령인지 안쓰러운 생각보다 화가 치솟는가 보다.

"침대에 누워 좀 쉬었다가 천천히 움직이지 그래요?"

어투는 조심스러웠지만 가장 강력한 요구를 한 셈인데 한 마디로 잘라버린다.

"아네요. 여우가 날 기다릴 거예요."

여우 모습이 눈에 밟힌다며 뒤뚱거리며 담장 끝까지 어렵게, 어렵게 걸어가 애타게 찾는다. 여러 번 불러 봐도 아무 반응이 없자 먹이통을 담장 아래 굴 앞에 그냥 놓아둔 채 솜털구름 깔린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를 바라보며 마냥 기다릴 작정이다. 멀뚱하니 바라보던 아들이 성큼성큼 걸어와 양털로 짠 어깨덮개를 걸쳐주고 말없이 등을 도닥여 준다.

출렁이는 버들은 모진 바람에도 그 자리에 꿋꿋이 서있다. 물관 체관이 차오른 노란 히스 꽃숭어리가 어룽지는 이른 봄에 여우를 만났다. 그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보랏빛 히스라니! 계절 변화를 알리는 바람의 체온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빛바랜 가을 어스름이 밤을 재촉한다.

마뜩찮은 두 남자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한다. 말려서 들을 낌새가 아니라고 느끼나 보다. 그렇게 애타게 여우를 찾아도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여우와 함께 춤을 추었다. 마지막으로 본 날이 정확히 19일 전인데 이렇게 소식을 끊을 수가 있을까? 분명히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어디 몹쓸 동물이나 여우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여 불쌍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난 버드나무 아래서 수영장 근처에서 담장 아래에서 먹이통 앞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그림자처럼 여우를 기다린다. 꼼짝하지 않고 찬바람 속에 앉아있는 몸으로 한기가 파고든다. 낮부터 밤까지. 꿈속에서 만난 여우가 눈물 그렁한 눈으로 가슴에 포근히 안긴다. 그런 다음 날엔 모든 게 손에 잡히지 않아 허둥거린다.

4.

정원 바비큐 나무식탁 위에 반듯이 누워 흔들리는 하늘을 본다. 수술대 위에 누운 절름발이 스스로를 해부하고 싶어서다. 자기를 떠난 여우처럼, 업무에 치이고 비틀거리다 서울로 소환되어간 남편처럼 어느 한 구석 균형이 맞지 않는 몸을 반듯이 누이고 허공에서 관조하듯 샅샅이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항시 바람 기운이 있는 잉글랜드 날씨라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구름도 흔들리고 마당도 흔들린다. 흔들리다 보니 세상이 흔들리고 이젠 자신마저 흔들린다. 모든 게 거기 그대로 요동치지 않고 있는데 자신이 흔들리면서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피에로처럼 혼란을 부른다. 너무나도 조용한 하늘땅 가운데서 카오스를 부르는 건 세상을 지배하는 무엇이 아니라 자신이다. 그것이 점점 심해지다 보니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 없는데요.'

'그런데 왜 아플까요?'

'글쎄요.'

누구지? 이명이 빙빙 마당을 베돌고 싸늘한 가을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바람이 된 남편은 뜻하지 않은 회사 사정으로 긴급 소환장을 받고 일그러진 얼굴로 훌쩍 서울로 가버렸다. 어린 여우도 아무 말 없이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도 떠나야 한다.

푸른 하늘은 항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갑작스레 먹장을 몰아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한다. 여우비인가? 볼을 스치는 바람의 무게가 눈물이 된 비를 흩뿌리고 비루를 털어먹은 이파리들 유언이 파르르 소름을 일으키며 등짝을 떠민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사위스런 기운이 일렁이더니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비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치며 나무들이 휘청거리는 요란스러운 날씨로 바뀌는 변덕을 보인다. 폭풍을 몰고 오기 전의 전형적인 영국의 가을 날씨려니 하며 밤늦게까지 테라스 룸에서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뒤적거리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2층으로 올라간 순간, 누군가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벨을 누르지 않고 왜 문을 두드리나? 이 늦은 밤중에 귀찮게 누구람?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다. 사방을 훑어봐도 아무도 없다.

'이 궂은 날씨에 누가 장난을 치나?'

다시 침대로 돌아와 드러누우려 할 때 또다시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화가 치솟아 좇아가서 문을 왈칵 열었다. 역시 아무도 없고 바람만 들이친다.

귀신에 홀린 걸까? 현관을 나와 마로니에 가로수로 빼곡한 거리로 뛰어가 본다. 없다. 거리는 휑하니 비었고 포도는 빗물에 젖어 번들거린다. 아무도 없다. 쥐죽은 듯 조용한 거리에는 빗방울 소리가 바람과 함께 헤졌고 있다. 온몸이 비에 흠뻑 젖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신 줄 놓은 여자처럼 멍하니 서있다. 왜 현관 두드리는 소리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자신이 생각해도 귀신에 홀린 것만 같다.

바로 그때. 저 멀리 눈에 익은 모습 하나가 보인다. 어린 여우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 여우가 비바람 속에 윔블던 방향 언덕으로 절뚝거리며 천천히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짧은 소리를 거푸하면서.

놀뛰는 맥박을 다독이며 멍하니 바라본다. 긴 꼬리가 땅에 닿을 듯이 출렁거리고 비치적거리는 걸음걸이가 처연히도 아름답다. 어디로 가는 걸까? 희미한 가로등 아래 그 뒤를 좇아서 세찬 빗방울이 하동지동 달려간다. 울렁거리는 빗물을 타고 다시는 못 올 길인 것처럼, 하늘땅 닫힌 것처럼…….

예고 없는 이별은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자신을 다독일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그러나 가슴에 무거운 돌 하나 매다는 몸짓의 작별은 먹먹하다. 불현듯 찾아와 시간을 붙잡고 머물다가 추억의 갈피만 그냥 남겨둔 채 아무런 이유 없이 가버리는 것은 서로를 잃어버리는 고문과 같다.

꿈을 꾸나? 살을 꼬집어 의심한다. 비를 몰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듯이 마로니에 나뭇잎들이 하르르하르르 떨어져 땅바닥에 들붙는다. 거리는 온통 나뭇잎으로 번지르르하다. 빗물이 낙엽 위로 흐르고 눈자위 눈물이 고였다가 빗방울과 함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빗물이 눈물이 되었다 다시 빗물이 된다. 바람에 못 견딘 마로니에 밤톨 열매 하나가 딱! 머리를 세차게 때리고 난 스르르 땅바닥에 무너져 내린다.

번쩍! 악몽만큼이나 바람의 변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창을 치는 밤,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하다. 또다시 불면이 찾아오려나 보다.

5.

기대를 잔뜩 하고 떠났던 5년간의 외국 생활이 느닷없는 병마와 싸우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서울 작은 성냥갑에 갇히는 원점으로 되돌아와 쳇바퀴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래도 한번 망가진 몸이라 조심, 조심하며 최소한의 활동으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연 1년이 훌쩍 지나고 또 다른 연말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나 12월 31일을 맞이하면 송년의 밤을 경건하게 보내고 싶어 한다. 촛불 하나 밝혀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내일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인 만큼 밝고 건강하고 하느님을 위해 부끄럽지 않게 지내자고 돌아가며 기도하고 마음속으로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지길 다짐한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기미조차 없고 멀쩡하였는데 내가 기도를 올리려는 바로 그 순간에 누가 보면 연극하는 것처럼 갑자기 온몸이 근지러워 미치도록 긁고 싶어 너무나 고통스럽다. 참을 수 없이 긁다 못해 이제 살갗을 뜯어내려는 듯이 피부를 쥐어짠다. 한밤중이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연말연시부터 응급실로 갈까 하고 나서다가 그럴 정도의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남편이 두고 보자 하여 밤낮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차가운 물탕에 온몸을 담갔다가 말끔히 씻고 연고 같은 것을 발라 마사지하고 진정시킨 다음,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2일 오전 9시 경에 문을 연 가까운 피부과를 첫 번째 손님으로 찾는다. 근지럼 같은 병은 피부과에서 해결될 줄 알고 찾은 것인데 불그스레한 피부 상태를 꿈꿈이 살피던 의사의 얼굴이 점점 심각하게 일그러지더니 추천서를 써줄 터이니 이 길로 당장 내과를 가보란다. 피부과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단다. 단골로 다니는 내과로 달려갔다. 눈을 까집어 보고 혀를 내밀어 보는 등 꼼꼼하게 진찰하더니 그 의사 또한 당장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추천서를 써주고 고맙게도 예약까지 잡아준다. 아무래도 개인 병원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는 질병인 것 같단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하는 직감에 겁이 덜컥 났다.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한데다가 신년 벽두부터 이 무슨 날벼락인가 하고 S종합병원에 도착해 추천서를 제출하니 일사천리로 CT를 찍는다, 피검사를 한다는 등 난리 법석을 치더니 아무래도 특수부위 내시경을 해야겠단다. 다음 날 의사는 위장서부터 췌장 주변까지 내장 곳곳을 살펴보는 내시경을 한 뒤에 우릴 부른다. 꼭 무슨 큰 죄를 짓고 판사 앞에서 선고를 받는 범죄자처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와들와들 떨린다.

"황달이 심해 담도, 담낭을 침범하여 많이 상하였고 위, 그 아래 십이지장, 췌장까지 예후가 아주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하고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즉시 수술해서 이 부분들을 다 절개해야할 것 같습니다. 병명은 십이지장 유두의 암으로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보이니까 수술 후 조직검사까지 해봐야 정확하게 그 상태를 알 수 있겠습니다."

목숨이 걸린 위기 앞에선 결단이 빠르다. 수술이라면 몸서리쳐지지만 빨리 하자고 조르기까지 한다. 그날로 관리는 외과와 종양내과로 넘어가고 이 분야 최고라는 의사인 K박사가 집도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궁하니까 남편이 아는 분을 통해서 누가 이 분야에 권위자인지 알아보고 간곡히 부탁하여 어렵게 K 박사님이 집도하기로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그런데 수술하기 바로 전날 밤에 K박사가 병실로 찾아와 갑자기 피치 못할 일이 생겨 정말 미안하다며 자기가 가장 신뢰하는 젊은 후배 의사에게 맡기면 어떠냐고 묻는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전도유망한 외과담당 전문의라고 믿어보라 한다. 어쩔 도리 없이 수긍하여 만난 외과 선생님이 윤 박사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잘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고 시큰둥하게 시작했는데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는 행운도 있다. 특히 병원에서 의사를 잘 만나는 것이 환자에겐 아주 중요하다. 유명세가 있고 없고 간에 환자와 잘 맞는 의사가 따로 있고 그 분 판단에 따라 그리고 호응하는 환자의 대응에 따라 죽고 사는 것이 확연히 달라진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의사와 환자의 합이 잘 맞아떨어져야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겐 윤 박사가 생명의 은인이다. 어렵다는 수술은 6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거의 하루의 반인 11시간 30분만에야 끝났다. 위장의 반을 담, 담낭, 담도, 십이지장 전부를 그리고 췌장의 반을 잘라내는 고난도의 수술을 한 것이다. 런던에서 대장을 거의 다 잘라내었으니 위장 반에 췌장 반, 그리고 곧바로 소장으로 연결되는데다 대장까지 거의 없으니 그야말로 기형적 내장을 소유한 여자가 된 셈이다. 그 후 어떤 의사가 농담조로 무장녀無腸女라고 부를 정도인데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낙천적이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난관을 예상 밖으로 씩씩하게 잘 버팅기고 있었다. 몸무게가 40kg에 불과한 자그마한 체구로 금방 쓰러질 것 같이 연약하지만 정신력으로 어려운 고비를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이 첫 번째도 아니고 여러 번 겪는 하느님의 시험이라 어렵고 숨 막히는 상황이라 온몸이 피폐할 데로 피폐해진만큼 극복하기 쉽지가 않았는데도 말이다. 씩씩하게 몸을 괴롭히는 병마를 거의 잊어버린 채 방송통신대학 교육학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지난해 초에 이 과목을 꼭 공부하고 싶어서 등록한 것인데 이제 시험시기가 다가오니 그에 대한 걱정으로 준비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워본다. 또 취미로 새로운 뜨개질을 배워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제 가방을 뜨는 등 쉴 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니 한 달 여 입원할 때도 그렇지만 퇴원 후 주마다 받는 항암치료와 약물 치료, 그리고 권장하는 운동에다 식단, 비타민 등 관리할 것이 한 둘이 아닌데도 식구들을 미소로 다독이며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서로를 위로하였다.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 초짜 인턴 하나가 암이 3기이며 거의 불치이기 때문에 길어야 6개월 정도라고 묻지도 않는 말로 덜컥 겁을 주었지만 이제 일일이 대꾸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짓이라 다 툴툴 털어버리고 앞만 보고 최선을 다했다. 담당의 윤 박사님의 세심한 안내와 떠나지 않는 미소, 긍정적인 태도에 반은 환자가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고 주변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정성껏 관리를 해준 결과 10%에 불과하다는 생존율 안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친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되는 부분이 있어 병원비만 감당하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누구나 집안에 암환자가 생기면 대체의학이란 곳에 문을 두드리게 되어있다. 주사, 약물 그리고 계속되는 방사선 노출에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니만큼 부작용이 없고 효과가 좋은 대체의학으로 보조치료를 하려고 애쓴다. 그걸 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길로 들어가는 기분에다 그런 것들로 밑바탕을 튼튼히 만들어야만 되는 선택적 필수 항목처럼 느낀다. 다른 환자들 관리보다 뭔가 뒤처지는 마음까지 생기니까 보호자는 물론 환자 자신도 그런 걸 바라고 있다. 그런데 이 대체요법이란 것이 너무 비싸기도 하지만 내용도 천차만별이라 선택하기도 어렵고 무엇이 환자에 맞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것은 주사 한 대에 수 천 만원 호가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이런 사적인 보조치료를 권하지 않는 것인데도 제각기 몰래 조금씩 손을 대고 있다. 우리도 남들과 다르지 않아서 홍삼서부터 AHCC, 상황버섯, 차가버섯 그리고 미슬토 즉 겨우살이까지 각종 좋다는 요법을 의사에게 알리지도 않고 다 써보는 것이다. 윤 박사도 처음 맞닥뜨린 환자에다 존경하는 선배가 신신당부한 환자라서인지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끝에 항암 치료약으로 제로다(Xeloda)라는 약을 권하였는데 그것이 잘 맞아떨어졌는지 아니면 다른 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인턴이 겁주던 시한부 6개월이 훌쩍 지나고 1년이 지날 때까지도 머리도 빠지지 않고 회복되어 이 절대 절명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

6.

항암 3년차 어느 주말, 여느 날처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을 때다. 수년 동안 항상 일요일이면 아침 9시 미사에 참석하여 앞에서 둘째 줄 아니면 제단이 잘 보이는 자리에서 하느님께 고해하고 당신의 충실한 자녀임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좌우 앞뒤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제단만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어머니 품 속 같이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에 잠겨 미사에 마음과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마지막 파송성가가 끝나고 신도회장이 광고 말씀을 할 때 누군가 뒤에서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깜작 놀라 뒤돌아보니 전임 신도회장님으로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오던 분이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 평생 이 성당에 다니는 골수 신자들로 같은 식구처럼 가깝게 지낸 분이다. 무슨 일인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한 내게

"혹시 아직도 아이들 가르치는 거 좋아해요?"

"그럼요. 제 꿈이 바로 그건데요."

그분은 현재 유명 사립초등학교 M의 교장선생님으로 계신다. 사연인즉 얼마 전 교사 한 분이 퇴직하여 임시 교사를 채용하려고 채용공고를 통해 몇 번 후보자 면접을 봤는데 마음에 드는 후보자를 찾지 못해 망설이고 있었다고 한다. 선발 경쟁이 치열해서 수십 명이 지원하였고 이곳저곳에서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전화도 많이 받아 혼란스러운 차에 평소 지키던 11시 미사가 아니고 오늘따라 9시 미사에 우연히 뭣에 끌리듯 참석하였다가 무심코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등을 보니 하느님이 예비하신 인물이 바로 여기 있구나 하는 기도 속 계시에 사로잡혔다며 넌지시 물어보는 거라 한다. 난 속으로 그렇게나 열망해오던 일이고 가슴 설레는 제안이라 뛸 듯이 좋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직 의료보험 중증환자로 등록되어 있는데 혹시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지레걱정에 다음 날 보건소에 문의하고 증명서를 발급 받으러 가니 간략하게 진찰하고 그냥 정상이라고 발급해주어 채용 면접에 정식으로 응모하였다. 남편의 해외 근무지로 따라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꿈이던 교사란 직업을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오묘한 하느님의 섭리로 우연한 기회를 잡고 중증환자임을 망각한 채 다시 그 꿈을 펼치려한다.

"선생님, 그건 외부입력1을 눌러야 해요."

2학년 1반을 담당하게 된 나는 예전과 너무도 많이 변한 교육환경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실수를 연발하며 진땀을 흘린다. 칠판 대신 빔 프로젝트, 필서 대신 컴퓨터 화면으로 그리고 파워포인트 자료를 대처하는 등, 밤새도록 눈을 말똥거리며 준비하고 연습하여 그렇지 않아도 중증 환자라 힘이 드는데도 좋아하는 일이라서 피곤하지도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 남편을 따라 해외로 나가는 바람에 교직을 그만 두기 전에는 모범교사로서 학교 대표로 또는 시의 대표로 공개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우수교사 표창까지 받았다. 교사직을 그만 둔 후 20여년 모든 환경이 급변하였고 특히 컴퓨터 사용으로 모든 업무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만큼 정보화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대라 좇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아 우왕좌왕한 것이다. 그러나 봉급 받는 직업인으로서 교사 위상을 생각하기보다 자라나는 새싹인 어린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듬고 아끼는 선생님으로 즐거워했다. 모든 것을 아이들 편에서 해결하려고 생각하다보니 저절로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 스스로가 나를 좋아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처음과 달리 컴퓨터에 의한 학습도 익숙해져 편리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서두르지 않고 밤새워 준비하고 파고들어 모든 난관을 해결하는 노력들이 아이들을 이끄는 힘이 되었나 보다. 옛날의 유명 교사 타이틀을 되찾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6개월이 채 안되어 서서히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학부모들이 우리 2학년 1반으로 편성되어 수업 받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린다고하고, 또 그런 말들이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학교에 흘러들어와 스스로도 어느 정도 자리가 굳혀간다고 생각했다. 이런 좋은 평판들이 내 몸을 부지불식간에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몸 자체는 피곤이 더해지는 나날이 되었지만 3~6개월마다 체크하는 암환자 검진에서 수치가 점점 더 좋게 나와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병이란 몸에 생기는 것이지만 치료는 몸 자체 치료도 중요하고 마음의 치료도 그만큼 중요한 것인가 보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에 좋은 일에는 항상 화가 따르는 법, 집에서 학교까지 자동차로 근 3~40분 정도 운전해야 하는데 항상 교통체증이 심해 1시간 이상 걸리고 밤새워 준비하는 일들이 많아 잠이 부족하고 피곤에 찌들다 보니 걸핏하면 자동차 사고를 내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앞의 차의 뒷공무니를 들이받는 가하면 신호를 잘못 보고 돌다가 충돌하기도 한다. 보험회사와 상의하여 처리하면 그만이나 좋지 않은 몸이 점점 더 외형적으로 망가지는 게 속상했다. 또 금방 들어온 기간 교사 하나가 사립학교에 작은 돌풍을 일으켜 학부모들로부터 폭풍 칭찬을 받다보니 동료 정교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나이도 많은 여자가 교장의 특혜로 들어왔다고 수군거리는데다 나의 열정을 도저히 못 따르겠으니까 여러 가지 모함을 만들어 곤경에 빠뜨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각종 수당이나 혜택이 전혀 없는 기간 제 교사에겐 매월 고정급여가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두 배 이상이나 많은 급여를 받는 정교사들이 시샘하는 것은 학부모들이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지만 지나치게 압박을 가하여 견딜 수 없게 만들어 스스로 그만 두게끔 하는 전략이다. 그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부터 대놓고 따돌림 실력행사까지 강도가 점점 더해가고 심지어 하지도 않은 일들을 덮어씌우거나 무고하게 비방하는 것 등 보이지 않는 집단행동까지 이르러 참다, 참다못해 결국 3년 만에 그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사표를 던지고 집에서 쉬고 있는 데 새로 부임한 교장이 불러 온갖 좋은 말로 구워삶으며 사표를 반려하고 다시 기간제로 일해 줄 것을 당부했지만 전임 교장도 그만 둔 상태이고 학부모들의 요구가 극심해서 이를 피하려고 노력하려는 신임 교장의 보이기 위한 행위라 여겨져 진정성이 없어 보인데다 돈 몇 푼 벌려고 나간 게 아니기 때문에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집에서 쉬고 있는 내게 같이 공부했었던 반의 학부모들이 집으로 전화해서 한 번만 만나주길 간절하게 바라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십여 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부모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교사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괜찮을 것 같아 교육상담에 응했다. 대부분 사정들은 내게 1년간 배운 뒤로 자식들의 행동 자체가 많이 달라진 점에 감사하고 앞으로 아이 진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요지다. 어떤 이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심지어 5년 후 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조언을 구하는 부모들도 있었으니 짧은 근무 기간에 비해 얻은 성과는 상당하다고 자평했다.

7.

여태껏 숨어 있던 통증이 다른 더 심한 병마에 가려져 있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암 투병에 가려졌던 허리통증과 고관절이 무너져 내리는 통증으로 화장실에서 대소변 보기가 힘들 정도로 꼼짝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개인 정형외과를 가고 종합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으나 모든 의사들은 즉각적인 수술을 권한다. 지긋지긋한 수술! 그냥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수술할 수 없다고 버티며 작은 일상까지도 힘겨워 끙끙 앓는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죽을 것만 같았던 암의 증세는 긍정적 사고방식과 황홀하리만치 스스로 푹 빠져 좋아했던 교사생활로 거의 다 나은 것 같은데 아직도 췌장에 남아있는 염증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3개월 또는 6개월에 한번 CT나 PET 또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그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숨이 멎을 것 같은 것은 숨어있던 척추의 병으로 다른 형태 중증환자의 길로 들어설 줄이야.

성당에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 신도 한 분이 계신다. 일제 강점기에 사범학교를 나와 처녀 적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하여 온갖 풍상을 다 겪으신 분으로 6.25전쟁 후에도 교직에 계속 계시다가 정년퇴직하신 근대사의 증인과 같은 분이다. 신앙심이 깊은데다 성격이 칼 같고 글씨도 얼마나 수려하게 잘 쓰시는지 모든 교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이다. 단 하나, 70세 무렵부터 허리가 굽어지더니 후반에는 완전히 기억자로 땅만 보고 지팡이에 의지하고 다니시는 분이다. 연세가 96세라고 하니 오랜 세월을 땅만 보고 다니셨단다. 그럼에도 한 주도 빠짐없이 미사에 참석하시니 열정이 대단하다고 신부님들이나 교우들로부터 마음 속 감탄을 자아내게 하신다. '참, 허리만 굽어지지 않으셔도 뭐든 하실 분이고 아마 백수는 따 논 당상일 거야.' 그러시던 분이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성당에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 사정을 잘 몰라 혹시 어떻게 되셨는가 하고 신부님이 연락하니 멀쩡히 집에 계시다고 한다. 다만 사정이 있어 그러니 얼마간 지나면 다시 참석하실 거라고 전한다. 그 나이에 허리가 굽어져 건강을 걱정하고 궁금해 하였었는데 근 1여년이 흐른 어느 주일날에 홀연히 나타나셨는데, 오! 하느님, 허리를 꼿꼿하게 하고 일반인들과 똑 같이 걸어 다니신다.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본다. 할머니가 약 20년 만에 하늘을 보고 걸어 다닌다고 말씀하실 적에 이건 주님의 기적이라고 다들 눈물까지 흘렸다. 자초지종인즉 현대의학으로 도저히 방법이 없어 꼬부랑 할머니가 팔자이거니 하고 지내왔었는데 수녀님 한 분이 물리 치료하는 유명한 선생님 한 분을 아는데 하번 가보시면 어떻겠냐고 하여 속는 셈 치고 들려봤단다. 병원에서 찍은 CT와 X-ray를 유심히 보던 치료사 선생님이 드러누우라고 하여 누워서 약 1시간 정도 지압 같은 걸 받고 나왔는데 거짓말 같이 등짝이 시원한 것 같고 기분이 너무 좋아 1주일에 2~3번 씩 계속 들려 치료를 받다보니 6개월 만에 등이 점점 펴지더니 이렇게 좋아졌다고 한다. 이건 현대판 기적이라면서 다들 신기해했다. 전보다 더 왕성하게 성당 봉사활동하시는 할머니가 하느님이 보낸 천사처럼 보였다.

수소문하여 그 물리 치료 선생님을 찾아갔다. 카이로프랙틱(Chiropratic)을 하시는 분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이 방법을 의료행위로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에선 이에 대한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어 선생님도 미국의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단다. 어림짐작으로 지압이나 안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판 정밀 검사에 의해 어느 부문이 이상한지를 확인하고 척추의 이상을 지압을 통해 조정하여 신경기능을 정상화하는 요법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정식 의료행위로 인정하지 않은 것인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현금만 가능하니 불편한 점도 있으나 사람마다 효과도 다르고 선호도도 달라 싫으면 그만 두면 되지 하면서 꾸준히 다녔다. 화장실도 혼자 힘으로 잘 다니지 못했는데 1주일에 치료 세 번을 받고 몇 주 후에 그 문제가 해결되어 혼자서 대소변을 보게 된 것이 신기했다. 점점 더 나도 선생님을 절대 신봉하는 사람으로 변해졌고 회수도 조금씩 바꾸어 일주일에 세 번에서 두 번, 2년이 지나서부터는 한 번으로 조정되었다. 치료를 받고 나면 아프던 모든 증상이 금방은 좋아진 것 같은데 또 며칠 지나면 다시 아프다. 그런데도 그 아픔이 전보다 아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덜하니 이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기적적인 치료가 아니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증상을 완화시키는 그런 보조 치료다.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거의 완치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이 들어서는 어떤 병도 한번 걸리면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고 완화시키면서 살아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딘가, 큰마음 먹고 병원에 가면 무조건 수술하자하는데 수술 이외의 방법으로 이런 방법이 있다니 마음 놓이지 않는가.

40대 후반에 느닷없이 맞닥뜨린 각종 시험들이 스물여섯 해가 지나는 동안 끊이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날 괴롭히고 있다. 인생 절정기라 일컫는 50대에 잠시나마 꽃피워보지 못하고 앙앙불락하며 허겁지겁 봉합하려다 불완전 개체인 절름발이 여우를 만나 한때 동질성에서 동화되는가 싶었으나 세월의 어둠 속으로 헤어진 다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어제는 반나절 동안 먹은 것을 다 토하느라 온종일 굶으며 아무 것도 못하고 보내는가 하면 오늘은 설사병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배를 움켜쥐고 있다. 그런가하면 허리 디스크에 관절통증, 무지 외반증, 피부트러블까지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다. 내일은 또 어디가 어떻게 아플지 아니면 어떤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되고 한편으론 아이로니컬하게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골골거리면서 주어진 하느님 시험들에 그냥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고 어우렁더우렁 함께 지낸다. 101호나 102호나 들춰보면 다 희비가 있는 삶이 있듯이 매달리며 산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마음의 상처만 남길 뿐이니 순명이러니 한다. 그러다 하늘이 부르는 날 조용히 응답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까짓것,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죽다 살아났는데 오뚝이처럼 아직도 멀쩡하면 된 거 아닌가?

두드리면 어떤 문이든 열리게 되어 있다. 미국, 영국, 그리고 서울에서 수술을 세 번 하고 시한부 사형 선고를 두 번이나 받고도 꿈에라도 자칫하면 죽는 거 아닌가 하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어렵고 지긋지긋한 병원생활도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극한의 통증도 참고 견디며 오직 한 곳만 바라보고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하늘의 응답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뭔가 하나가 부족한 듯 절름발이들처럼 다 불완전한 개체로 살게 되어있고 그 불완전성을 충당하기 위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하늘의 계시를 보내던 어린 여우의 울부짖음이 있던 그날 밤 이후부터 난 허송세월이란 큰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어떤 병마가 날 괴롭힌다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세상사를 부딪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9년 째 국학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이야기 할머니 활동은 어린 새싹들이 보고 싶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하고 Y구청 시니어합창단의 소프라노로 매년 공연하는 것과(코로나로 2년을 쉬었는데 이제 다시 한다고 함) 연필화에 심취하는 한편 가끔 글줄을 써서 존재감을 들어내기도 한다. 비록 중증환자로 등록되어있고 몸뚱이의 유효기간이 점점 다가오고는 있지만 건강을 체크하는 것과 사회활동을 병행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고목에도 꽃 피는 은혜가 찾아올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몇 개월에 한 번씩 첨단 기계 위에 벌거숭이 몸을 던지고 복잡한 검사를 받는 중증환자이나 이런 것까지 하느님이 펼친 영광 중 하나라 믿고 오늘을 환하게 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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