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에서 20세기는 흔히 '지휘자들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로부터 독일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오스트리아의 칼 뵘, 미국의 레너드 번스타인까지 명반들의 커버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지휘자들은 대부분 20세기에 활동한 거장들이다.
한국에서 클래식 명지휘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라얀'일 것이다. 그는 직·간접적으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1990년대 초반 TV에 나오는 오디오 광고를 우리는 기억한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와 웅장한 합창에 갑자기 한 백발의 서양인 지휘자가 등장한다. 그것도 압도적인 비주얼과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다. 지휘봉을 들고 온몸을 흔들어 대며 울려퍼지는 소리 빰! 빰! 빰! 카라얀의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당시 집집마다 전축을 들여놓는 것이 유행이었다.
카라얀은 한국의 음악가들과도 우정이 깊다. 신진 발굴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하며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의 베토벤 교향곡 해석은 첼리스트 장한나가 후일 지휘자가 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카라얀의 지휘는 어땠을까. 그와 동시대의 지휘자이며 느린 템포 연주로 유명한 루마니아 출신의 세르주 첼리비다케는 이렇게 말했다. "(카라얀의 연주는) 품격이 있지만 깊이는 없다. 그러나, 전 세계는 그를 알고 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코카콜라처럼 말이야." 당시 첼리비다케의 이 말은 순수 클래식 계열에서 호평이 아닌 혹평인 셈이다. 말하자면 카라얀의 연주에는 푸르트벵글러 지휘에서 나오는 '극적이고 감동적인 울림'이 없다는 거였다.
첼리비다케의 이 말을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코카콜라로 비유된 그것은 오히려 카라얀의 최대 장점으로 여겨진다. 코카콜라는 전 세계인이 좋아하고, 쉽게 구할 수 있어 대중적이며, 무엇보다 톡 쏘는 자극적인 맛이 있으니 말이다. 카라얀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인지는 의문이지만,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그는 분명 20세기 가장 강력한 음악인 중 한 사람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 카라얀보다 다른 지휘자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클래식을 대중화한 그의 공로는 가히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1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점이나, 음악사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필자는 지난 1월부터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에서 음악인문학 강좌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클래식 감상의 어려움에 곧잘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사라졌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기 때문이다. 폭염과 열대야의 날씨이지만 오늘 아침은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5번이나 9번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에 대해 금아 피천득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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