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업, 기업인!] 손기창 경창산업 명예회장 "100년 살아보니 正道 지키면 되더라"

"박정희 전 대통령 '유비무환' 정신으로 기업경영…美·中 진출 車부품 굴지 기업 성장"
“땀 흘리지 않고 대가 바라면 안 돼, 대구 기업들 잘해낼 것”
윤석열 정부에는 “산업 육성과 경제 성장에 중점, 나라 미래 기대돼”

지난달 21일 대구 달서구 경창산업㈜ 본사에서 만난 창업주 손기창(100) 명예회장이 백세기념 회고록
지난달 21일 대구 달서구 경창산업㈜ 본사에서 만난 창업주 손기창(100) 명예회장이 백세기념 회고록 '아홉번 넘어지면 열번 일어난 정도의 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작금의 세계고(世界苦) 코로나19가 모든 기업과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백 년을 살아보니, 나는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안다. 그래서 정도(正道)를 지키며,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이고 하면 된다는 신념이 나의 좌우명이다."

지난 2월 펴낸 경창산업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인 수당 손기창 옹의 상수(上壽) 회고록 '정도의 길' 서문에 나오는 문구다. 1923년생인 손 명예회장은 올해로 꼭 100세를 맞았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손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불과 15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생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기술을 배웠다. 이후 귀국한 그는 국내에서는 전기가 없던 1961년, 어두운 창고에서 등불을 켜놓고 종업원 7명과 수작업으로 자전거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공장은 현재 미국, 중국 등 해외지사와 9개 사업부, 2천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대구 굴지의 자동차 부품 기업 경창산업으로 성장했다.

매일신문은 창간 76주년을 맞아 손 명예회장이 상수를 지나며 체득한 지혜와 기업경영 철학, 국정운영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지난달 21일 경창산업 본사에서 만난 손 명예회장은 100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자필로 써 내려간 손 명예회장의 글씨체는 젊은이의 그것보다 정돈돼 있었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가?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0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회사에는 60년간 매일 똑같이 8시에 나온다. 오전 11시부터는 생산현장을 순회한다. 요즘은 휠체어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하루에 한 번은 공장을 꼭 둘러본다. 순회 때는 직원들의 작업태도나 손동작, 몸 자세 등을 주로 살핀다. 아무래도 출발이 금형 기술자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이런 부분이 품질 관리와 유지의 기본이라고 믿는다.

-애연가로 알려져 있고, 술과 골프도 즐기신다고 들었다.

▶버지니아를 핀다. 전에는 하루에 한 갑 정도를 태웠는데 요즘은 반으로 줄였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고 하지만 지금 끊어서 뭐하겠나. 술은 주로 막걸리나 정종을 마신다. 골프는 운동 삼아 일주일에 한 번 친다. 100세를 맞은 올해에도 여전한 취미들이다.

-지난달 19일 밀양에서 100세 기념 상수연이 있었다고 들었다.

▶고맙게도 일직 손씨 문중에서 상수연을 열어줘 참석했다. 200명쯤 오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350명이 와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상수연은 생애 제일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생과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았기에 맞이할 수 있는 날이었다.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조상께서 보살펴준 은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기업들이 환율·물가·금리 삼중고를 겪고 있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기업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기업과 노조, 정부가 힘을 합쳐서 이겨내야 한다. 다만 기업이 우선적으로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든 땀 흘리지 않고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 62년 전 동인동에서 처음 창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피땀 흘려 노력해 성장을 이뤘다.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은 없다.

-사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어려움이 있는가?

▶힘이 안 들 때는 한 번도 없었다. 큰 위기는 세 번 정도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였다. 외국회사와 합작해 투자했는데 갑자기 경기가 안 좋아졌다. 회사를 위해서 땅 3만 평을 팔았다. 공장을 해서 번 돈인데 공장이 어려우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두 번째는 IMF 때였다. 당시 경창은 트랜스미션(변속기)에 투자하고 개발 중이었다. 결과물은 없이 투자만 하고 있었는데 IMF가 터졌다. 노사가 함께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극복했다. 세 번째는 비교적 최근이었다. 이때도 노사가 화합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지난달 21일 대구 달서구 경창산업㈜ 본사에서 만난 창업주 손기창(100) 명예회장이 매일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지난달 21일 대구 달서구 경창산업㈜ 본사에서 만난 창업주 손기창(100) 명예회장이 매일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경창은 노사분규가 없기로 유명한데, 비결이 무엇인가?

▶경창의 노조는 과거 30인 직원이 조직한 친목회 성격의 '경우회'가 출발이다. 길흉사 모두 슬픔과 기쁨을 같이하고 춘추로 야유회를 해 친목을 다졌다. 이후 대한노총이 출범하자 경우회가 경창노조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노동청으로부터 노사화합 최우량 모범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사원들을 최고의 자랑으로 생각한다. 경창의 성장은 오직 사원들이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성과다. 좋은 직원을 가진 것이 경창의 엄청난 재산이다.

-대구의 차부품업계는 미래차 전환에 직면해 있다. 어떻게 보는지?

▶대부분 기업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 어려워질지는 몰라도 극복해 낼 것이다. 미래차 시대를 맞아 지역기업들이 변화에 대한 예측을 잘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지역의 차부품 기업들은 정부나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살아남으려 노력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건전하게 성장해 왔다.

-나라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윤석열 정부가 민간주도성장, 친기업 정책을 추진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업인은 국가 정책에 순응하는 것이 사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행정부에 대한 견해를 밝힐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 다만 윤 대통령은 산업 육성과 경제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어 기대된다. 기업이 주도하는 성장으로 더 많은 기업과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이 올라가는 선순환이 이뤄졌으면 한다. 그것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대구시장 또한 대선 후보급 인물인 홍준표 시장으로 바뀌었다. 어떤 변화를 예상하는지?

▶기업가는 그저 행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순응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를 평한다거나 잘잘못을 논할 능력이 없다. 경창이 지금까지 장수한 것도 열심히 기업 운영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지역기업을 두루 살피고 정부와도 타협해 대구가 더욱 살맛 나는 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존경하는 인물이 있는가?

▶두 분이 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주영 회장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6·25 이후 우리나라가 황폐해지고 국민이 선진국 구호물자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갈 때 '자립갱생'을 기치로 새마을 운동을 전개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가 토대가 돼 오늘날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불 시대를 열었다. 박 대통령의 정책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유비무환'이다. 기업경영도 유비무환의 자세로 하면 낭패를 보지 않는다. 정주영 회장은 이북에서 소 한 마리를 몰고 내려와 현대건설을 설립했고, 경부고속도로 개척의 주력 역할을 했다. 울산 백사장에는 현대조선소를 설립했는데, 당시 우리나라가 자전거를 겨우 몇 대 만들 때였다. 이후 현대차를 개발해 자동차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됐고, 그 덕에 경창과 같은 부품기업도 성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후배 기업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기업가정신을 꼭 강조하고 싶다. 노력 없이는 기업도 발전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다는 주지의 사실을 항상 새겨야 한다. 앞으로 산업의 변화가 많이 일어날 텐데 우리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민족이니 잘할 수 있다고 응원의 말도 전한다.

지난달 21일 대구 달서구 경창산업㈜ 본사에서 만난 창업주 손기창(100) 명예회장이 매일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지난달 21일 대구 달서구 경창산업㈜ 본사에서 만난 창업주 손기창(100) 명예회장이 매일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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