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333년, 동방원정길에 오른 알렉산더는 길목에 있는 고르디움(터키 동부)에 도착한다. 그리고 신전 앞에서 신의 계시를 담고 있는 고르디우스의 수레 앞에 우뚝 섰다. 수레는 신전 기둥에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매듭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 '이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를 정복하리라'는 신의 메타포가 전해지고 있어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이 매듭을 풀기 위해 도전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매듭을 풀지 못했다.
알렉산더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매듭을 주시했다. 그 순간 매듭의 끝부분이 자신의 칼날에 걸려 스르르 풀리고 있는 형상이 보였다. 그때, 알렉산더는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렸다. 묶어놓은 끈이 풀리고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잘려나간 매듭의 실낱들이 광채가 되어 신전 앞을 감쌌다. 알렉산더의 파격적인 행동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부하들은 알렉산더의 위력에 환호했다.
신전 앞에서 보인 알렉산더의 관례를 벗어난 발상 전환과 결단력은 그 동안 매듭을 풀려고 도전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일순간에 해결해 버렸다.
난제를 앞에 둔 알렉산더의 해법을 세인들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 한다. 정법(正法)이라기 보다는 기법(奇法)이다. 그러나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담긴 신의 예언은 알렉산더를 다중들의 신비감으로 싸이게 하였다. 그것은 달리 부하장병들에게 전승의 자신감을 심어주는 지휘관의 카리스마이기도 하다.
BC 4세기 초, 그리스의 북부 작은 도시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더는 그리스 전역을 자신의 통치권 안에 넣는다. 그 여세로 바다 건너 페르시아(이란)와 이집트까지 점령한 알렉산더는 마침내 동방으로 눈을 돌린다. 천하통일을 꿈꾸고 있던 알렉산더는 아시아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인도라고 생각하며 웅혼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반드시 히다스페스강을 건너리라! 신은 우리 편에 있다."
사실상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은 자신이 정복한 페르시아의 동쪽을 방호한다는 전술적인 이점과 아울러 미지의 땅, 인도를 점령하면 정복자로서 동방 정벌을 더욱 손쉽게 노릴 수 있다는 대전략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정복자의 욕망인 동시에 동서를 아우르는 거대한 문화의 망을 엮어나가는 걸음이기도 하였다.
"내가 가는 곳에 알렉산드리아(도시)를 건설하고 아테네의 신성을 스며들게 하리라." 장기간의 행군으로 인도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뗏목을 타고 인더스강을 건넜다. 그리고 서북쪽의 히다스페스강에 도착하자 인도의 포러스군대가 앞을 굳게 가로 막고 있었다. 알렉산더군은 1만 1천여 명에 불과한 데 비하여 포러스군은 거대한 코끼리 부대를 앞세운 3만 4천여 명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애숭이 알렉산더! 너는 내가 지키고 있는 한 히다스페스를 넘지 못한다. 포러스의 울타리 안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병력수가 열세한 데다 장거리를 행군해 온 알렉산더에게 포러스군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알렉산더는 전의를 다졌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수많은 전장을 경험하였기에 패기만만했다.
"알렉산더여! 이기고 돌아오라. 그대는 제우스 신의 아들이다!" 알렉산더는 모든 그리스인들의 절대적인 환호성을 떠올리며 히다스페스강을 바라보았다. "폭이 넓은 이 강을 어떻게 건너야 하나!" "포러스군을 제압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무엇일까?"
열세한 전투력, 악천후의 우기 그리고 질병 상황 속에서 그는 정공법이 아닌 기공법에서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적을 교란케 하라!"
강은 범람하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강물이 빠지고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소문을 은근히 퍼뜨리면서 한편으로 도하훈련을 강행했다. 나무를 잘라 목선과 뗏목을 만들고 유속이 빠른 황토빛의 물길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떼가 되어야 한다며 훈련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반면에 포러스군은 대치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로의 누적과 함께 정신적으로 느슨해지기 시작하였다.
기회를 노리던 알렉산더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주력부대를 우회하여 포러스군의 배후를 기습 공격한다. 양군이 맞붙자 강물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얼룩져 흘렀다. 알렉산더는 일천여 명의 부하를 잃는 반면 포러스군은 2만3천여 명이 전사하고 지휘관 포러스까지 생포되면서 전투는 끝이 났다. 포러스군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한 양동작전으로 알렉산더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히다스페스 전투다.
알렉산더는 제위 13년 동안 10여 년을 동방원정에 힘을 쏟으며 항상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았다. 닫힌 세계가 아닌 열린 세계를 보게 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알렉산더의 해법이 모두 옳다거나 지혜롭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복잡하게 얽힌 문제 앞에 선 지도자라면 때로는 알렉산더의 선택을 눈여겨봄직 하지 않을까 싶다.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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