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왜 사니?" "왜 살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가끔 들어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왜 사세요?"와 같은 말을 타인에게 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어떨까. "나는 왜 사는가?" 우리는 "살아 있으니까 산다"거나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거나 "마지못해 산다"고 대답하곤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이 하루하루를 사는 데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나.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가 올바른 질문일 수 있겠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의 마지막 단골 문장은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행복하게 살기'는 인류 지상 최대의 화두이다. '다른 것은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이렇듯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가수 나훈아의 '테스 형'이라는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왜냐하면 인생의 디폴트값(default value) 즉, 기본값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苦)이다. 이 '고'(苦)가 현대 정신건강의학적으로 비유하면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뜻하는 '디스트레스'(distress)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트레스(stress)이다. 모든 게 다 고통, 즉 '일체개고'(一切皆苦)이다.

"세상을 살고 있는 한, 고통은 항상 존재하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이 있는 곳에 고통은 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곧 살아 있는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은 고통 없는 삶일까. 아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간신히 버텨 큰 고통 없이 살아간다 싶을 때,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또 다른 고통으로 찾아온다. 행복을 인생의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불행이 온다.

항상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일까. 이 또한, 아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인생의 기본값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행복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힘들어한다. 이렇듯, 우리는 너무나 많이 행복해야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고 산다.

행복이 목적일 수도 있지만 행복은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인생의 기본값인 고통 속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순간이라도 고통이 완화되거나 없으면 행복한 것이다. 순간이라도 행복감을 느낀다면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 살아가는 과정 속 순간순간의 잦은 행복이 필요하다.

당신은 지금 고통스러운가. 인생의 기본값이 고통이기에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고통 속에서 때로 현재(being), 이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이다. 미래를 위해 무엇이 되기(becoming) 위해 달릴 때, 여유 있는 마음으로 달리기에 몸을 맡길 때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인생의 기본값인 고통을 잊거나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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