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국, 일본 등 이른바 '문화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고대·근대·현대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흐름에 따른 공간을 두고 시대 구분과 역할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는 시대별 미술관을 두는 동시에 주요 문화시설을 소도시에 분산 배치해 지역 성장과 문화 균형발전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이들 사례를 통해 근대미술관의 필요성과 문화 분권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본다.
◆국가 정체성 높이는 시대별 미술관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은 사실 수 십년 전부터 제기돼온 국내 미술계의 과제다. 하지만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미뤄져오다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 기부로 인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나라 고유의 근대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술관별로 역할을 차별화하기 위해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대와 현대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인 근대 작품을 전문적으로 수집, 보존, 연구, 교육, 전시하는 미술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문화가 강한 주요국의 경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오르세미술관-퐁피두센터 ▷영국 대영박물관-테이트브리튼-테이트모던 ▷일본 국립도쿄박물관-국립근대미술관-도쿄도현대미술관 등 고대-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시대별 미술관을 잘 갖추고 있다.
이 중 프랑스의 오르세미술관, 영국의 테이트브리튼, 일본의 국립근대미술관은 해당 국가의 근대시기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전시, 연구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영국 테이트브리튼은 1천500년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영국 작가의 작품 위주로 전시하고 있다. 특히 영국 대표 화가이자 인상파의 선구자로 불리는 윌리엄 터너의 주요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어,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유럽은 물론 전세계의 관람객들이 찾는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근대미술 작품으로 특화돼 있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작품이 있어 이른바 '인상주의의 보고'(寶庫)라고 불린다.
이처럼 시대사별로 미술관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제인 동시에, 미술관의 세계적 트랜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술사 연구가 활발해지고 시대 구분이 촘촘해지면서 세분화된 시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며 "프랑스와 영국, 일본, 독일은 물론이고 최근 싱가폴도 국가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시기별, 분야별로 세분화하고 있는 추세다. 오로지 자국 정체성을 높이기 위함인데, 우리나라도 이같은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적 균형발전 위한 시설 분산 배치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로렌주의 도시 메츠(Metz). 인구 12만여 명의 소도시에 2010년 퐁피두센터 분관이 문을 열었다.
퐁피두센터 메츠는 퐁피두 센터에서 장기 대여한 작품들로 상설전을 운영한다. 다양한 방식의 전시와 세미나, 교육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특색있는 미술관으로 자리잡았고, 매년 평균 관람객 수가 48만 명을 웃돌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이어 2012년에는 프랑스의 최북단 지역 파드칼레주 랑스(Lens)에 루브르박물관 분관이 개관했다.
루브르박물관 랑스는 루브르박물관의 전체 컬렉션 중 500여 점을 선정해 전시를 이어간다. 2, 3년 주기로 전시품을 교체하며 연 2차례 국제적인 기획전을 운영한다. 또한 전시 관련 강연과 미디어 자료관 운영,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문화예술 관련 활동을 늘려가고 있다.
특히 랑스는 석탄 산업의 쇠퇴로 실업률이 치솟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프랑스 정부의 문화시설 분산으로 매년 수 십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 활기를 띠는 지역이 됐다.
오 연구위원은 "퐁피두센터 메츠와 루브르박물관 랑스는 문화시설의 분산 배치로 인한 지역 성장과 문화 균형발전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며 "문화시설이 중앙에만 집중되고, 그로 인해 문화 균형발전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과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현상이다. 전국민의 평등한 문화향유 기회를 보장하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남부권 거점 최적지인 대구에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효연 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은 "문화 민주화, 지역 분권화, 세계화를 위한 프랑스의 노력과 실천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부끄럽다"며 "우리나라도 국립 미술관, 박물관이 붙박이처럼 전시를 이어가기보다 순회전 등을 통해 지역에 결핍된 문화유산을 보급하고 함께 누릴 수 있는 시스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다. 서울에 집중된 문화예술이 서울 시민의 것만이 아닌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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