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임석균 씨의 어머니 고 우남천 씨

"무한한 자식 사랑 어떻게 전할까요…어머니의 주머니 더듬으며 여쭙니다"

임석균 씨의 어머니 고 우남천 씨가 지니고 다녔다는 주머니와 그 속의 물품들. 가족 제공.
임석균 씨의 어머니 고 우남천 씨가 지니고 다녔다는 주머니와 그 속의 물품들. 가족 제공.
돌아가신 임석균 씨가 갖고 있는 어머니 고 우남천 씨의 유일무이한 사진. 주민등록증이 처음 만들어질 때 발급용으로 찍은 증명사진으로 당시 와병 중에 촬영했다. 가족 제공.
돌아가신 임석균 씨가 갖고 있는 어머니 고 우남천 씨의 유일무이한 사진. 주민등록증이 처음 만들어질 때 발급용으로 찍은 증명사진으로 당시 와병 중에 촬영했다. 가족 제공.

어머니, 저에게는 반세기 가까이 보관하고 있는 낡은 무명주머니가 있습니다.

모서리는 닳아서 손바느질 자국이 희끗 희끗해 보이고 세 가닥 명주실로 엮은 끈은 군때가 묻어 회색빛으로 촉촉이 젖은 볼 품 없는 것이지만 나에겐 어찌 천금의 값어치에 비할까요. 그것은 이젠 영겁의 뒤안길로 떠나신 어머니의 유품인 것입니다.

생전에 어머니의 손길은 이 주머니 속으로 무수히 넘나들며 모정의 씨앗을 뿌렸을 것입니다. '여자의 일생' 이라는 소설 제목이 있던가요? 주머니 속을 뒤져 보면 한 여자로서 아니 어머니로서의 일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댁 시절의 쪽집게, 맵짜던 시집살이 때의 침핀, 단추, 고무줄, 노년에 못 다 쓰신 지폐…. 이런 것들을 보노라면 생전에 한 많으셨던 그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 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고 하는 말이, 어머니의 일생을 통해 피부 깊숙히 감지되는 것 같았습니다. 가세가 넉넉잖은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오신 후, 9남매의 뒤치다꺼리와 어려운 가계를 꾸려 가시기에 노년을 잊으시더니, 끝내 중풍으로 졸도 하셨습니다. 그 날 혼수상태 속에서 온 가족의 근심스런 눈길을 받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책가방을 든 채 당일의 학비걱정을 하였었지요.

모성애는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가? 당신의 수족이 말을 듣지 못하고 의식은 몽롱한 가운데서도 손끝은 치맛자락 속의 주머니로 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도움으로 학비를 받아 듣 내 손등엔 무수한 눈물방울이 모자이크 되었고 사실상 그 날로 어머니의 손길은 그 주머니 속에서 마지막이 되었으니 그후 반신불수로 고난의 투병생활에 들어가셨습니다.

연륜이 흐른 나머지 나는 직장인이 되어 머나 먼 객지로 떠났고 가끔씩 귀향할 때 드린 용돈이 주머니 속으로 역류했지만 볼 때마다 언제나 그대로 구겨져 들어 있었습니다. 살림을 차리고도 타관살이라 늘 뫼시지 못한 아쉬움을 갖으면서 낙엽은 몇 차례 지표위에 선회 했는데, 삭풍이 불던 어느 날 아침, 그날은 유난스레 고향생각이 나더니 조마조마 하던 어머니의 부음을 받았습니다.

염을 하던 날 새까맣게 눌러 붙은 어머니의 젖꼭지를 만져 보며 막내의 설움을 달래던 순간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무도 몰래 끌러서 양복 주머니에 넣어둔 것이 오늘까지 아끼는 물건으로 남았고 생전의 모정을 반추해 보는 한 순간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이 가신 뒤 꼭 한 해가 될 무렵 첫 손주가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돌이 지나 오리걸음을 할 즈음 주머니 속의 지폐를 꺼내서 양말을 한 켤레 샀습니다.

"임마, 이건 할머니가 사 주신거야, 아끼고 아껴 오래 오래 신어라. 응?"

제 어미 품에 안긴 어린 것은 그저 생글거리기만 하고 할머니를 꼭 닮았다는 뒷머리만 긁적거릴 뿐이었습니다. 나는 늘 내 생활이 분수에 넘치거나 안락함에 빠질 때면 이 주머니를 어루만지며 생전의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제 분수껏 살아야 한다. 항상 나 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 쓸 때 없는 욕심이야 생길 까닭이 없지. 그저 바르게 열심히 살아야지."

어머니께선 저에게 값진 유산을 물려주셨던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 줄 수 있을까? 재산을? 명예를? 아무것도 자신이 없습니다. 내 아이에게 이 주머니의 의미처럼 아낄 수 있는 것을 남겨주기 위해서도 내 인생의 발자국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첨단의 문명 속에 찌든 아이들에게 감나무 아래에서 두 손 모으시던 당신의 사랑을 어떻게 심어 줄까.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만 했지만 어떤 방법으로 주는 것이 값진 유산으로 남겨지게 될지…. 나는 오늘밤도 어머니의 주머니를 더듬으면서 철없이 물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낡고 조그마한 주머니는 어머님의 무한한 자식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 오늘 따라 더욱 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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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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