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가 국무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가 왜 지난 5년간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 "공공기관들의 파티는 끝났다"고 호기 있게 말했다. 경제부총리가 말 폭탄을 터트리자 언론은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 높은 연봉, 과도한 성과급을 비판했다. 일부 임원은 자의 반 타의 반 성과급을 반납했다. 곧이어 기획재정부는 14개 '재무위험 공공기관'을 발표했다. 신용평가사들이 사용하는 총자산수익률로 공공기관을 평가한 결과라고 한다. 재무위험 공공기관은 경영 개선안을 제출하고 이행 여부가 경영 평가에 반영된다. 이러한 일은 역대 정부가 반복한 정치적 '클리셰'이다. 클리셰는 식상하다.
우리는 안다. 공공기관 부실은 방만한 경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기획재정부도 안다. 공공기관 적자가 무능과 도덕적 해이 때문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공공기관을 민영화하면 된다. 우리는 안다. 민영화가 해결책이 아님을. 물론 경제부총리도 안다. 경제부총리는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는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공기관 대신 정부가 직접 필수 서비스를 공급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문제가 커진다.
기업이 필수 서비스를 공급하면 요금은 올라간다. 가난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소비하지 못한다. 대신 적자가 발생하지 않으니 세금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 이윤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둘 수 있다. 이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면 소비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필수 서비스의 특성상 기업이 독점화되는 문제가 남는다. 정부가 낮은 요금으로 직접 필수 서비스를 공급하면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요금이 낮으니 과도한 소비도 발생한다. 요금을 올리면 적자가 줄겠지만 정부는 요금 인상을 꺼린다.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이 필수 서비스를 공급하고 정부가 공기업을 평가한다.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기준은 '수익성'과 '공공성'이다. 공공기관이 존속하려면 수익을 내야 하지만 공공성을 무시할 수 없다. 공공기관이 최대한 수익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막대한 흑자를 냈다는 이유로 땅장사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이 무리하게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바뀌면 평가 기준도 바뀐다. 새로운 정부의 국정 철학이 평가 기준에 반영된다. 국정 철학에 따라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항목과 중요도가 달라진다. 박근혜 정부는 수익성 15점, 공공성 7점이었으나, 문재인 정부는 수익성 5점, 공공성 25점이었다. 이 정도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이른바 재무위험 공공기관은 억울하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평가 기준에 따라 공공성을 중시한 결과 수익성이 나빠졌다. 평가를 받는 기관은 평가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 수익성을 무시하고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평가 기준이 잘못됐다. 윤석열 정부는 다시 수익성을 높이고 공공성은 낮춘다고 한다. 5년 뒤 공공기관 수익성이 개선되고 공공성은 악화될 것이다. 그때는 다시 수익성은 낮추고 공공성을 높이자고 할 것인가. 정부 교체 때마다 공공기관은 평가 기준이 바뀌는 불확실성을 감내(堪耐)한다. 공공기관에 책임을 묻기 전에 수익성과 공공성이 적절하게 반영된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웬만하면 평가 기준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일관성 있는 경영을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의 수익성을 강조한다. 무엇이 옳은가. 둘 다 그르다.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민영화하면 필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기업은 돈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기업이 하지 않는 일을 공공기관이 한다. 요금 인상 없이 공공기관이 수익성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금 투입 없이 공공기관은 수익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달성하지 못한다. 기업이나 정부가 못하는 일을 공공기관에 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황금률(Golden Ru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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