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디테일의 악마’ 넘어서야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대구 문화계에 공공기관 개혁의 기치를 내건 '홍준표발(發)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대구시 산하 공공기관 통폐합이 본격 추진되면서 관련 기관장들의 사퇴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기관 종사자들뿐 아니라 지역 문화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문화재단 ▷대구관광재단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미술관 등 6개 기관을 단계적으로 합쳐 가칭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장차 진흥원을 지역 문화예술 전체를 지휘하는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근래에 보지 못한 강력한 충격파에 지역 문화계에선 놀라움과 당혹감을 내비치면서 갑론을박도 치열하다.

문화계 한쪽에서는 지금껏 별다른 구조개혁이 없어 일부 기관 및 단체가 중복된 업무를 해왔고 비대해졌다며 '손을 댈 때가 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대구시립교향악단 등 예술단들이 언제부턴가 초심을 잊어버렸다며 대내외적인 비판이 이어져왔다. 일부 시립예술단원의 비정상적인 근무 행태와 겸직 문제 등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침내 대구시는 운영 개선을 위한 조직 진단 용역도 했다.

한 문화계 인사는 "음악에 조예가 있는 시민들은 일부 시립예술단의 기량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그만큼 예술단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다. 이렇게라도 칼을 대지 않으면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통폐합이 획일적이고 너무 급하게 진행된다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충분한 여론 수렴과 공론화 과정이 없는 '밀어붙이기'식 추진 아니냐는 것이다. 색깔과 성격이 다른 기관들을 무조건 합치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분야를 통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라는 의견과 함께 대구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소수의 전문 인력이 끌고 가는 기관을 다른 기관과 통합하는 것은 오히려 전문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일각에선 홍 시장이 과거 경남도지사 시절 통합 추진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예를 들면서 자칫 그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한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설립은 지금까지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문화계에선 어떤 식으로든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듯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떻게 '소프트랜딩'(연착륙)시킬 것인가에 이번 정책의 명운이 달렸다. 그렇기에 대구시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지금 불거지는 우려와 반발에 귀 기울이고 정책 추진에 충분히 협의하고 조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관에 칼을 들이대니까 당연히 반발하겠지'라고 치부한다면 '위에서부터의 개혁'은 변죽만 울릴 수 있다. 정책에 대한 충분한 홍보와 설득 작업도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18년째 이어져온 '컬러풀페스티벌'이 갑자기 '파워풀축제'로 바뀐 것은 '불통' 논란을 일으켰다. 축제뿐 아니라 도시 브랜드명을 파워풀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명쾌한 명분과 이유 없이 추진된 느낌이다. 나중에 새 지자체장이 나오면 '원더풀'로 바꿀 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런 행태가 기관 통폐합 과정에서도 벌어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개혁이라도 추진 과정에서 세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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