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메모리’

정의로 돌아선 킬러 마지막 응징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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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모리'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액션 장인 리암 니슨이 막(?) 찍는다.

마지막 불꽃이라도 터트리려는 것일까. 지난 해 '어니스트 씨프', '마크맨', '아이스 로드'에 이어 올해 3월 '블랙라이트'를 들고 오더니 이번 주에는 '메모리'로 한국 극장가를 찾았다. 한국 나이로 71세의 노구. 종횡무진하는 액션 다작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메모리'(마틴 캠벨)는 제목의 힌트처럼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는 청부살인업자를 그린 액션물이다. 깔끔한 일처리의 킬러 알렉스(리암 니슨)에게 알츠하이머 병 증상이 나타난다. 살인청부업자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다.

은퇴하려고 하지만 살인 브로커는 "이 세계에 은퇴란 없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두 명의 살해 지령을 내린다. 남자를 살해하고 정보가 담긴 플래시 메모리를 손에 넣는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물이 열세 살 소녀여서 포기한다. 살해를 지시한 변호사에게 지시를 취소하면 메모리를 주겠다고 하지만, 조직은 소녀를 죽이고 알렉스까지 살해하려고 한다.

수십 년간 살인청부를 했지만, 알렉스에게는 아이를 죽이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그 원칙이 거부되고, 조직의 표적이 되자 그는 분연히 일어나 악당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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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모리'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메모리'는 벨기에 영화 '알츠하이머 케이스'(2003)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벨기에의 베스트셀러 작가 제프 기어라츠가 1985년 발간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메모리'는 미국 텍사스 앨파소로 배경을 바꾸고, 멕시코 인신매매 조직을 등장시켰다. 장소와 시대만 바뀌었을 뿐 원작의 틀은 그대로 옮겨 왔다.

이 스토리가 추구하는 것은 소위 권력을 가진 자들의 추악한 이면이다. 어린 소녀들을 성노리개로 쓰고, 촬영까지 하는 파렴치범들이다. 그들은 권력과 금권의 비호 아래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빠져 나간다. 정의로운 누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평생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 온 죄 많은 노인 킬러라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다.

알렉스는 알츠하이머 약병을 가지고 다닌다. 킬러의 기억법이라고 할까. 살인의뢰를 받고는 혹 헷갈릴까 태블릿 속 사진을 반복해 보면서 머릿속에 집어넣고, 호텔 룸 넘버도 팔뚝에 써두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사항을 몸에 적는 장면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2000)가 떠오르기도 한다. '메멘토'의 주인공 가이 피어스가 FBI 요원 빈센트로 나오니 더욱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알렉스가 어둠에 있던 정의의 사도라면 빈센트는 제도권에서 정의를 실현하려고 애를 쓰는 FBI 요원이다. 위장 수사를 하다 소녀의 아버지를 죽게 한다. 그러나 소녀마저 지켜내지 못해 무기력에 빠져 있다. 알렉스는 그에게 수사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잠시나마 함께 정의를 실현하는 길에 동행이 된다.

가이 피어스와 함께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해 눈길을 끈다. 그는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부동산 재벌이다.

마틴 캠벨은 '버티칼 리미트'(2001), '카지노 로얄'(2006) 등 상업성 높은 작품들을 연출한 감독이다. 그러나 '메모리'는 안일한 연출로 범작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알렉스가 정의 길로 변심(?)하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난 오랫동안 나쁜 놈이었다"며 알렉스가 킬러로서의 '자격 탈퇴'를 선언할 때는 공감할 만한 설정이 뒷받침 돼야 한다. 킬러란 돈을 받은 후 살해 지시를 엄수하며, 그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알렉스가 등을 돌려 사용자에게 총을 겨눌 때는 지병과 노화가 심해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어야 하는데, 지병이 있다고 하기에는 열정이 넘치고,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힘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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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모리'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프랑스 영화 '테이큰'(2008) 이후 리암 니슨은 자신만의 네임택을 달았다. 이른바 '리암 니슨표' 액션 영화이다. 대부분 영화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나쁜 짓을 하는데, 미워할 수 없는 이미지의 이웃집 아저씨 수호천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모리'의 알렉스는 매우 적절한 캐릭터이다. 소녀를 지키는 할아버지는 공감할 만한 갈등 구조다. 그러나 원빈의 '아저씨'처럼 집중시키지 못하고, 원작이 막강한 권력의 장관이 배후인 반면 '메모리'는 여성 사업가로 설정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도 부족하다.

결국 '메모리'는 액션과 스토리, 캐릭터 등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을 자아낸다. 특히 알렉스라는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데, 배우 리암 니슨의 생물학적 나이에 너무 의지한 측면도 있을 것 같다. 113분. 15세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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