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돈을 벌고 쓰고 만지며 산다. 일에 찌들고 지친 날이면 "돈이 뭐기에"란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누군가 돈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녹록지 않다. 물건을 살 때 내미는 지폐, 통장에 찍힌 동그라미를 돈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돈을 설명하는 일은 학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20세기 경제학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조지프 슘페터(1883~1950)조차도 생전에 "화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만족할 만큼 명쾌하게 정리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고 하니 말이다.
'돈의 본성', '자본주의 특강'의 저자이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화폐가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한다. 화폐라는 렌즈로 돈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화폐 이데올로기·역사·정치'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동안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주로 다뤄지던 화폐를 사회학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이 책의 독특한 지점이다.
사실 상당수 사람들은 화폐를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금 등을 교환 매개물로 사용하게 됐다는 게 일반인들의 상식이자 오랫동안 경제학계를 지배해온 화폐 이데올로기다.
반면, 지은이의 생각은 다르다. 지은이는 화폐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약속을 의미하는 '신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류 경제학의 화폐이론에 반기를 든다. 물건을 구입하는 즉시 물건값에 해당하는 채무를 지게 되고, 그 채무를 해소하기 위해 신용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지은이에게 있어 화폐는 다른 물건과 '교환'되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에 따르면 화폐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제금융 현상과 구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화폐를 교환 매개에 특화된 물질이라고 보면 화폐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잉햄 교수는 화폐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난 '신용'으로 보기에, 화폐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화폐를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이냐의 문제는 경제 및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화폐가 단순히 교환 매개에 특화된 것이라면 경제 분석을 위해 화폐를 별도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럴 경우 금융위기가 와도 원인을 알 수도,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도 없다. 따라서 경제·금융 현상과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화폐를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 수많은 조치에도 금융위기가 재발한다는 건, 곧 "화폐의 독자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주류 경제학의 화폐 이론을 손볼 때가 왔다는 신호"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가상화폐, 각종 간편결제,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 지역 화폐 등 최근 나타나고 있는 화폐현상들에 많은 혼동을 느꼈다. (…) 이 혼동의 주된 원인은 화폐의 본질을 잘 모른다는 점에 있었다. (…) 신용화폐의 틀로 최근의 화폐현상들을 바라보면서 많은 의문이 풀렸다." 경제학을 전공한 두 옮긴이의 말이다. 다만 술술 읽히진 않는다. 288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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